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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1-22 17:53
[주간우리만화]정용연의 국토지리여행-'만리재를 오르며'
 글쓴이 : 우만연
조회 : 1,584  
   http://urimana.tistory.com/6 [538]

만리재를 오르며

 

길은 모두 도성 한양으로 통했다.

육로와 수로를 따라 조선의 모든 인적자원과 물적자원이 끊임없이 도성 한양으로 모여들었다.

특히 곡창인 삼남의 물산은 서해뱃길을 지난 뒤 한강의 물길을 통해 도성과 가까운 마포나루에 부려졌다.

마포에서 부린 짐을 싣고 도성으로 향하는 길은 쉽지 않았다.

만리재란 큰 고개를 하나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멀리 애오개로 돌아가는 길이 수월하긴 하지만 시간이 더디 걸리니 힘들더라도 만리재를 넘는 편이 낫다.

 

만리재는 세종대왕의 한글창제를 반대했던 부제학 최만리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정확한 위치는 모르지만 최만리가 고개 어디쯤 살았다고 한다.

조선시대엔 한성판윤 관할인 성저이십리에 속했고 근대 이후론 마포구 공덕동에 속한다.

지금은 4차선 도로가 뚫려 하루 수만 대의 차량이 넘나든다.

서울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이 일대도 개발의 손길을 벗어나지 못했다.

수많은 주택과 빌딩이 전봇대의 전선과 난마처럼 뒤엉켜 어지러운 서울을 상징한다.

근래엔 유명 건설사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주위 풍경을 압도 한다.

하지만 만리재의 랜드마크는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의 한겨레신문사 사옥이다.

보수일색의 언론시장에서 진보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신문.

대한민국 진보언론의 맏형.

한겨레신문사에서 발간하는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을 보았던 이는 기억하리라.

한겨레 21”의 권두 칼럼 만리재에서.

 

2010. 11나는 한겨레 신문사가 주최하는 행사에 초대받아 지하철 5호선 공덕역에서 내렸다.

매표소를 나서는 데 낯익은 여자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만화 그리는 후배 H였다.

어디 가냐 물으니 집에 가는 길이란다.

우연한 만남.

반가운 마음에 H와 지하철 역사 벤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H가 말하길 자기도 한겨레신문사에 간 적이 있다고 했다.

한겨레신문사 자매사인 시네21에서 발간하는 만화잡지 팝툰이 주최하는 공모전에 작품을 응모하기 위해.

응모 마감 일마감시간이 임박하자 공덕역에서 내린 만화가들이 만화원고를 들고 고개를 오르는데

한겨레신문사에 다다를 무렵엔 모두 기진맥진하더라는 것이다.

H에겐 별 것도 아닌 걸 맛깔나게 이야기 하는 능력이 있었다.

조선시대 태어나 전기수로 활동했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을 불러모았을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스토리텔링이 중요해진 시대.

H에겐 누구도 따르지 못할 커다란 무기가 있다.

나는 그 것이 부러웠다.

 

H와 헤어진 뒤 숨을 몰아쉬며 고개 길을 오르는데 문득 등용문이란 고사성어가 떠올랐다.

황하의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오르던 물고기가 마침내 용이 되어 하늘에 오른다는 이야기.

H를 비롯한 그날의 만화가들 역시 용이 되고자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관문에 만리재란 오르막길이 있었다.

물론 만리재란 고개와 작품의 성과와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이상하게 그 날 내게 만리재는 하나의

상징처럼 다가왔다.

용이 될 것인가?

아니면 여느 물고기들처럼 급류에 쓸려 내려갈 것인가?

오늘도 황하의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처럼 만리재를 오르고 있을 많은 사람들.

나를 포함한 그들 모두에게 전하고 싶다.

도성한양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고.




::저자 정용연은


1968년생

멀리 모악산이 바라다보이는 김제 들녁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다. 청소년기는 서울 청량리에서, 성인이 된 뒤에는 서울?경기 지역에서 살았다. 이십 대 초반, 백성민 선생 문하에서 1년 동안 만화 수업을 받았고, 이십 대 중반에 만화 운동 단체인 <작화 공방>에서 잠시 활동했다,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중후반까지는 만화 외 일들을 했으며, 이후 창작 만화를 그리고 있다.


작품목록

<주간 만화>에 단편 만화 '하데스의 밤'으로 데뷔.

월간 <민족 예술>, 월간 <참여와 혁신>, <한겨레신문>에 만화 연재.

다큐멘터리 만화 <사람 사는 이야기> 1,2에 '나무 이야기' 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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