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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2-06 17:58
[주간우리만화]정용연의 국토지리여행-'벌레먹은 돌'
 글쓴이 : 우만연
조회 : 1,603  
   http://urimana.tistory.com/14 [514]

벌레먹은듯 이상하게 생긴 돌을 발견한 것은 임진강을 여행하면서다.

한강과 임진강이 몸을 섞는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부터 임진강 상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여행.

조선의 청백리 황희정승이 여생을 보내던 반구정을 돌아본 뒤 경기도 연천 장남교 아래 차를 세웠다.

겨울 찬바람 속에 다리위를 거닐며 바라본 임진강은 짙푸르렀다.

강 저편에 교각을 건설 중이었지만 상대적으로 개발이 덜된 탓에 물도 맑았다.

강가에 내려와서는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물수제비를 했다.

수면위로 파문을 그으며 퉁기듯 날아가는 돌...

강바람은 매서웠지만 상쾌했고 나는 연신 돌을 주워 집어들었다.

집어든 돌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측정할 수 없는 긴 시간동안 마모되어 자갈로 변한 화강암사이로 보이는 이 돌의 정체는 무엇일까?

임진강 상류인 한탄강으로 거슬러 올라가서도 이상한 돌은 화강암 자갈에 섞여 낯설었다.

 

철원 평야 한가운데 움푹 꺼져 굽이굽이 흐르는 한탄강.

한반도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협곡이 펼쳐져 있었고 고석정, 순담계곡, 화적연 같은 비경이

여행자의 눈을 사로잡았다.

검은 독수리떼가 날고 있는 저 들판 끝에는 궁예가 세운 태봉국의 도성터가 있을 터였다.

외성의 길이가 무려 12.5km에 달했다는 태봉국 수도는 갈 수 없는 땅이었다.

누구의 발길도 허용치 않는 비무장지대 DMZ.

화려했던 도성의 흔적을 주춧돌로나마 확인하려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듬해 여름과 겨울 무엇인가 홀린 듯 나는 다시 한탄강을 찾았다.

굽이굽이 휘돌아가는 가는 강물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벌레먹은 듯 이상하게 생긴 돌은 예외없이

화강암과 뒤섞여 강주변을 뒤덮고 있었다.

기실 내가 벌레먹은 듯 이상하게 생겼다 일컫던 돌은 화산지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무암이었다.

협곡 한가운데 홀로 우뚝 솟은 고석정의 고석은 이 땅의 역사를 설명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단서다.

1억년전 중생대 백악기에 관입한 화강암은 이 일대를 이루는 기반암이었으나 약 27만년전에서

1만년 사이 분출한 현무암질 용암류에 의해 매몰되었고 이후 침식작용 받아 다시 표면에

드러난 것이다.

현무암이 침식작용을 받아 밑으로 움푹 파이면서 강물이 유입되고 오랜세월 강물에 마모된 현무암은

화강암과 뒤섞여 지금과 같은 형태로 남게 된 것.

화산섬인 제주도에서나 볼 수 있던 현무암이 강 곳곳에 흩어져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벌레먹은 듯 이상하게 생긴 돌은 우리에게 슬픈 전설을 전한다.

서기 989년 부하인 왕건에게 쫓겨 달아나던 궁예가 한탄강에 이르러 깊은 한숨을 쉬었는데

그 한숨으로 구멍이 숭숭 뚫렸다는 것이다.

한탄강을 우리말로 풀면 한여울로 철원시에서는 직탕폭포에서 고석정으로 이어지는 한여울길을

조성해놓고 있다.

한여울 길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굽이치는 강물로 한없이 아름답지만 궁예왕의 전설로 슬프다.

궁예왕은 여기 한탄강을 건너 저멀리 보이는 명성산으로 달아났지만 왕건부하의 추격을 면할 수

없었고 죽음에 이르러 울음을 삼켰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이 산을 울음산이라 일컬는데 울음산을 한자로 표기하니 명성산(鳴聲山)이 되었다.

조선후기 인문지리학자 이중환의 택리지엔 철원을 소개하는 글 말미에 이렇게 적고있다.

“들 복판에 물이 깊고 벌레먹은 듯한 돌이 있어 매우 이상스럽다”

실사구시의 정신을 지닌 실학자답게 돌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았지만 지질의 역사까지 알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때 강에서 주워온 돌을 보니 역시 벌레먹은 듯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한반도 지질의 역사는 근대 이후 밝혀졌다.






::저자 정용연은


1968년생

멀리 모악산이 바라다보이는 김제 들녁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다. 청소년기는 서울 청량리에서, 성인이 된 뒤에는 서울?경기 지역에서 살았다. 이십 대 초반, 백성민 선생 문하에서 1년 동안 만화 수업을 받았고, 이십 대 중반에 만화 운동 단체인 <작화 공방>에서 잠시 활동했다,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중후반까지는 만화 외 일들을 했으며, 이후 창작 만화를 그리고 있다.


작품목록

<주간 만화>에 단편 만화 '하데스의 밤'으로 데뷔.

월간 <민족 예술>, 월간 <참여와 혁신>, <한겨레신문>에 만화 연재.

다큐멘터리 만화 <사람 사는 이야기> 1,2에 '나무 이야기' 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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