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영화지 '씨네 21'에 10여년동안 연재된 영화패러디만화 '정훈이의 내 멋대로 시네마' 400여편 가운데 105편이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됐다.

잡지를 사 보고 '씨네 21' 홈페이지에 접속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일명 '정훈이만화'를 보기 위해서라는 애독자가 많을 만큼 정 작가의 작품은 코믹하게 때로는 황당하게 많은 이의 웃음과 공감을 이끌어낸다.

주연배우는 목도 없고 허리도 없는 둥글둥글한 체형의 남기남, 사기꾼 기질이 농후해 보이는 씨네박, 스스로 '쎅시걸'이라 생각하는 '오버걸' 김꽃달 등이다.

영화와 텔레비전 속의 '쭉쭉빵빵' 미녀미남들이 대한민국 아줌마.아저씨 캐릭터로 리모델링되고 매트릭스의 네오는 '네 옷', 트리니티는 '츄리닝티', 모피어스는 '모피 옷' 등으로 대입되는 기발한 패러디에 읽는 이는 모두 쓰러질 수 밖에 없다.

'정훈이만화'는 영화 평론이나 해설칼럼도 아니고 때로는 영화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지만 패러디한 영화와 절묘하게 한 맥락을 이루며 당시 시대 상황이나 정세까지 담아내기도 한다.

그의 만화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에세이류 카툰들이 이미지로 승부하는 것과 달리 텍스트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강하며, 자유로운 상상으로 순수한 인간상을 그려 우리 사회의 상식과 편견에 일침을 가한다.

그렇다고 독자에게 '비틀어보기' 또는 '뒤집어보기'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소위 의식 있는 사람들이 말하는 만화의 비판기능과 사회풍자는 생각만큼 찾기 힘들지도 모른다.

작가는 작품 속 캐릭터에게 의식을 강요하지 않고 작가가 만든 황당한 세상에서 마음껏 뛰어놀게 했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잘나지 못하고 촌스럽고 상식 이하의 사고를 지닌' 사람들이지만 각박한 인간사회에서도 때묻지 않은 심성을 간직하고 있으며 현실세계 인간들처럼 영악하지 않다. 그들은 생각한 대로 움직이는 아주 단순한 성격의 인물들이다.

이런 점들이 오히려 그들에게 더할 수 없이 친근한 생명력을 불어넣어준다.

'인크레더블', '어린 신부', '실미도', '스파이더맨', '반지의 제왕', '올드보이', '분신사바'…. 남기남과 함께 웃고 울다보면 어느새 코미디, 로맨틱코미디.멜로 , 드라마, 액션, SF.판타지 , 스릴러, 공포 등 7개 상영관을 지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후속작 '정훈이의 뒹굴뒹굴 안방극장'은 이달 중순께 출간될 예정이다.

이 책에서 남기남은 TV 속 주인공으로 변신, 겨울연가의 욘사마가 되기도 하고 도올로 분해 열띤 강의를 하기도 한다.

정훈이 지음. 이끼북스, 236쪽, 1만2000원.

나경수기자 ksna@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