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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7-19 11:21
춘천 중도
 글쓴이 : 박성린
조회 : 3,221  
   http://rinyart.egloos.com/5361594 [1164]




저는 학교를 춘천에 있는 한림대학교를 나왔습니다. 



중고등학교 때는 공부를 지지리도 못했지만 역사관련과목들은 늘 재미를 느끼고 열심히 공부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당시 제 성적에 역사학을 가장 잘 배울수 있는 학교인 한림대학교로 갔을때 그 기쁨이 매우 컸었습니다. 



제 자랑 같아 좀 민망하지만 교양은 수업빠지고 대충듣고 뭐 그래서 교양과목 위주로 들었었던 1,2학년 성적은 그냥 그랬지만(2학년때는 학사경고 2번 연속~!!! ^ ^;;) 전공위주로 들었었던 3,4학년때의 성적은 좀 많이 좋았습니다.(한과목 제외하고 모든 전공 학점은 A이상이었죠 ^ ^;;)



춘천의 환경은 매우 좋았고(지금도 그럴지 모르겠네요 ^ ^;;) 무엇보다 수도물을 그냥 먹어도 그 맛이 서울과 달랐습니다. 



학교 바로 뒤에는 봉의산이 있었고 봉의산 산자락에서 낮술도 많이 먹고(선후배, 친구 교수님들 등등) 저와 친구들의 자취방 등등 공부하기도 좋았지만 놀고 먹기도 좋았었습니다. ^ ^



딴거보다 학교앞에 닭갈비가 매우 저렴하고 양도 많고 맛도 매우 좋았는지라(1주일에 4회 이상 먹어도 안질리는 신기한 음식입니다.) 저렴하게 잘 놀수 있는 환경이 매우 킹왕짱이었죠 ^ ^
퍼온 사진입니다. 그 당시의 맛과 양이 일품이었던 춘천만의 거대한 철판 닭갈비가 먹고싶네요 ^ ^;; 예전에 유행타서 전국적으로 퍼졌지만 춘천외의 지역에서 먹는 닭갈비는 진짜 닭갈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1인입니다. 특히 서울 시내의 닭갈비는 영~



본론으로 들어거서 그당시 추억중의 하나는 고고학 공부와 발굴알바였습니다. 



한림대학교 박물관은 다른 대학박물관과 마찬가지로 발굴조사를 많이 했습니다. 더군다나 춘천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은 문화유적들이 즐비한 곳이었습니다. 맥국의 수도였다는 전설이 있고 또 실제로 제 모교인 한림대학교 운동장 뒤에는(봉의산 기슭이기도 한) 선사시대 주거지 겸 무덤이었던 유적지가 있기도 했습니다. 
요기 있습니다. 
지금은 이런 모습입니다. 거주지로 사용하다가 무덤으로 전용해서 사용된 유적입니다. 3구의 인골이 출토되었습니다. 이 사진들은 퍼왔습니다. ^ ^;;



그런 발굴 알바는 물론 노가다와 가까운 작업이었습니다. 그러나 큰 체험학습의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작업은 당연히 대학원 선배님들이 했지만 그 광경을 옆에서 볼수 있었다는것 자체 만으로도 큰 배움의 기회였고 쉽게 할수 없는 경험인 것은 확실하죠~
이런 유물들을 직접 드러내기 직전까지의 삽질은 저희같은 알바들의 몫입니다. 말그대로 삽질입니다. 매우 재미있는 ^ ^



춘천 중도는 예전에 의암호를 건설하면서 물에 잠긴 예전엔 강가였던 곳입니다. 상중도와 하중도가 있는데 예전엔 다 소양강의 왼쪽 강가였다는 말이죠.. 네이트에 검색해보니 중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나와 있네요..



춘천시 중도동에 위치한 중도유원지는 의암댐 건설이 이루어지면서 생겨난 섬이다.


의암호로 둘러싸인 중도는 면적만도 34만평으로 주위 경관이 매우 뛰어나 사계절 대학 M.T나 야유회, 체육대회 장소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춘천의 관광 명소이다. 중도유원지는 무엇보다 넓은 공간들이 많아 가족 여행이나 단체여행 시에 다양한 체육행사 및 놀이는 물론 다중숙소와 중도펜션에서 숙박이 가능하며 보트를 즐길수 있는 수상 레저 시설과 수영장도 마련되어있어 여행코스로 아주 적당한 곳이다. 중도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약 5분 정도 의암호를 가로 질러 중도리조트에 도착하게 되는데 섬전체가 잘 가꾸어진 나무숲과 잔디로 조성되어 있어 편안함을 느낄수 있다. 또한 선사시대유적지인 적석총, 움집, 고인돌과 현충탑등이 복원 및 조성되어 있어 학생들의 체험학습장으로도 인기있는 장소이다. 저렴한 요금의 다중숙소와 콘도식구조인 중도펜션에서 바라보는 의암호의 물 안개는 잊혀지지 않을 즐거운 추억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제가 학창시절을 보낼 당시에도 하중도의 절반은 이미 공원화 되어 있었습니다만 큰 건물을 세우거나 하지는 않고 잔디밭과 자전거 도로, 선착장 등등을 만들어 놓았을 따름입니다. 의암호에 수몰될 지석묘를 옮겨 복원하기도 했지만 그 아래에 있는 유적지들은 흙속에 덮여 있었다고나 할까요? 나머지 절반은 주민들이 거주하며 농사를 지으며 사는곳이었습니다.  



고고학 학회에서 공부할때 주민들이 거주하는 하중도에 가서 지표조사 하는 법을 배우고 무문토기 조각들을 처음 제 손으로 찾아 집어올렸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시골 농가의 한쪽에 마련된 민박 시설로 MT도 자주 가고 지표조사도 가고 발굴 알바도 갔었던 제 추억의 장소입니다. 
그리고 제 추억의 장소뿐만 아니라 중도 전체는 신석기, 청동기, 초기철기시대까지 이어지는 유적지이기도 합니다. 산악지역에 둘러싸인 분지인 춘천은 산길 몇군데만 막으면 방어하기도 쉬웠고 강을 통한 교통도 매우 편리한 요지였습니다. 분지의 너르고 비옥한 들은 농업에도 적당했고 홍수피해도 거의 없고 가뭄에도 강을 통한 농업 생활용수 확보가 용이한 사람들이 모여살기 매우 매우 좋은 입지조건을 가진 곳이었다는 거죠...
시베리아-연해주-함경도를 통해 남하한 무문토기인들이 한반도 남부로 이동하는 주요 통로이자 거점이었을거란 설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중도에 대해 길게 잡설을 늘어놓고 있는 이유는 4대강과 관련되어 중도유적지 전체를 파헤친다는 뉴스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수많은 자연을 파괴한 4대강 사업의 뉴스를 볼때마다 가슴이 찟어지는것 같았지만 그 강변에 즐비한 알려지지 않은 문화 유적들까지 이미 마구 파헤쳐졌을거라 생각하면 가슴이 더욱 먹먹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중도까지 파헤친다는 뉴스를 보니 그냥 앉아있을수 없을 지경입니다.  일본처럼 문화유적을 소중히 하고 발굴조사를 완벽히 한 다음에 그 위에 흙을 2~3미터 이상 덮어 보존 하고 선사유적지를 복원해서 역사문화공원으로 꾸미는 등등의 형태가 아니라 무조건 속도전으로 밀어붙일것이 당연한지라 그냥 미치고 팔짝뛸 노릇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만 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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