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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9-26 16:03
정용연 만화 4 '소나무'
 글쓴이 : 우만연
조회 : 1,830  

어린 시절 소나무가 싫었다.
까칠까칠한 나무결부터 찐득찐득 달라붙는 송진도 비뚤비뚤 자라나는 모습도 싫었다.
우리나라 나무들은 왜 책에서 보았던 외국나무들처럼 일자로 곧게 뻗어
자라지 않는 걸까?
작고 볼품없는 소나무가 왜 이리 많은 걸까?
어쩌면 어린 시절의 난 소나무를 통해 권력의 함수관계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늘을 향해 일자로 뻗은 나무가 많은 나라는 크고 잘사는 나라.
굽은 소나무 천지인 우리나라는 작고 못사는 나라.
아니 가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떠나고 싶은 것 말이다.
당연 어딜 가나 눈에 띄는 소나무가 싫어질 수밖에.

그토록 싫어했던 소나무였지만 세월이 흐르며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또한 소나무였다.
나는 어느 때부터 소나무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먼저 깎아지를 듯한 절벽 위에 서있는 한 그루 소나무는 그 어떤 역경과 시련을 견디는
강인함으로 받아들여졌다.
나아가 끈적끈적한 송진은 아픔으로 점철된 우리민족의 눈물이며 상처를 쓰다듬는
치유제로 생각되었다.
특히 조선시대 우리 화가들이 그린 그림에 매료되면서 소나무에 대한 나의 생각은 바뀌었다.
이 땅에 살았던 조선의 화가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그려 보았을 나무가 소나무였고
소나무를 잘 그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을 터.
조선의 산하와 풍물을 담아내고자 했다면 비켜 갈 수 없었던 것이 바로 소나무였다.
실로 이 땅은 소나무 천지였던 것이다.

돌아보면 어린 시절 품었던 생각이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니다.
오랜 가난과 전쟁의 상처로 우리나라는 천지가 민둥산이었고 산엔 볼품없는
나무들뿐이었다.
산마다 숲이 우거지게 된 것은 근래의 일.
국가적으로 추진한 산림녹화의 결과다.
더욱이 야산이 대부분이었던 나의 고향에선 땔감사용으로 잘 자란 나무를 보기
힘들었고 소나무도 사방조림용으로 심은 북미원산의 리기다소나무가 대부분이었다.
몸통엔 온통 솔잎이 삐죽삐죽 튀어나오고 송진은 먼지를 뒤집어 써 지져분하기
짝이 없는 소나무.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자라는 리기다소나무는 자연 가난을 상징할 수밖에.

잘사는 나라일수록 크고 잘생긴 나무가 많음은 세계 산림 지도를 통해서 확인된다.
산림녹화의 정도가 한 나라의 경제력을 측정하는 바로미터인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이 땅에 리기다소나무를 심지 않는다.
수명이 짧고 목재로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리기다소나무가 이 땅에서 차지하는 면적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사라져가는 것은 리기다소나무만이 아니다.
수천년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전통 소나무도 사라져간다.
자연 천이(遷移)의 과정에서 참나무에 밀려 개체 수가 자꾸만 자꾸만 감소할 것이다.
물론 한 순간에 사라지지야 않겠지만 그래도 난 오래된 친구를 떠나보내는 것처럼
소나무를 볼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짠하다.

오늘 생각난 김에 소나무나 한그루 그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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