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지나치기 쉬운 사소한 사건들의 본질을 잡아내는 그의 능력은 탁월하다. ‘습지생태보고서’의 주인공은 등록금도 내기 힘든 자취생들. 이들은 ‘잘 사는 것’들의 우월의식에 대해 궁시렁대기도 하지만, 스포츠카와 ‘양키친구’를 가진 동창을 만나면 금세 우쭐댄다. 백화점에 들어갈 때도 손가락에 걸친 차키를 돌리며 들어간다. 구질구질한 삶의 이중성을 짚어내는 시각은 너무 날카롭지만, 불편하기보다는 실소가 터져나온다.

때론 톡톡 튀는 감각으로 때론 묵직한 주제의식으로 사물을 그려내는 방식도 뛰어나다. 휴대폰 충전녀와 휴대폰남의 불륜을 그린 ‘비애’는 네티즌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은 작품. “둘이 뭐했냐, 충전도 했냐” “이런 편의점 충전기 같은 ×야”라는 대사엔 뒤집어질 수밖에 없다.

‘공룡둘리…’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한국사회의 치부를 드러낸 수작이다. 20년이 지나 ‘민증’도 없이 한국에서 불법체류하는 ‘노동자’ 둘리와 몸을 팔거나 동물원에 끌려간 그의 친구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착잡하지만 그게 현실이기에 외면할 수 없다.

최규석의 독특한 시각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최씨는 “‘습지’에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생긴 것 같다”며 웃는다. 작품 소재는 대부분 대학시절의 경험에서 나왔다.

“6명이 한 자취방에서 산 적이 있는데 만화학과의 특성상 매일 한두명씩 야간작업을 했어요. 하지만 모두가 작업이 없는 날이면 잘 곳이 없죠.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를 거예요.”

최씨는 변기연, 정철과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신세대 만화가로 초청받아 지난 1일 벨기에로 떠났다. 7일 귀국 후 새로운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조만간 연재 1년을 맞는 ‘습지생태보고서’를 마감하고 후속신작으로 습지의 연애버전을 연재하겠다고 밝혔다. 최씨는 “제목은 ‘아프면서 좋은’으로 결정했다. 본심과 말하는 것이 다른 연애의 본질을 재밌게 풀어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구질구질한 삶에 조소도 서슴지 않지만 애정 어린 시선을 놓치지 않기에 그의 ‘습지적 생태만화’는 더욱 빛이 난다. 그는 국가인권위에서는 제작하는 인권만화 ‘십시일반’ 제작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이제 그의 시대다.

〈글 김준일기자 anti@kyunghyang.com〉〈사진 김영민기자 viol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