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무리반도를 처음 들은 것은 <98년 22회 이상 문학상 수상 작품집>을 통해서다.

소설가 박상우가 쓴 중편 소설 제목이 바로 <말무리반도>였다.

꿈을 잃고 현실에 떠밀려 내려온 남자와 다리를 저는 바다윗말 처녀 주희의 만남.

말무리반도는 신산하기 짝이 없던 두 남녀 주인공의 내면을 드러내주는 무대장치로

기능했지만 책장을 덮은 뒤 곧 잊혀졌다.

2010년 여름. 설악산 울산바위에 올랐던 나는 내친 김에 차를 타고 강원 북부 해안도로를 달렸다.

경포호 청초호 영랑호 광포호 송지호 화진포...

바다의 침식작용으로 생겨난 호수들을 거슬러 닿은 곳은 고성 통일전망대였다.

전망대에 오른 나는 책장을 덮음과 더불어 잊혀졌던 말부리반도와 만났다.

코발트빛 하늘아래 펼쳐진 쪽빛 바다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해안선을 따라 길게 이어진 모래사장.

그 위로 뱀처럼 구불구불 가로지르며 흐르는 하천.

소나무숲 저편으로 점점이 떠 있는 작은 섬.

해금강은 동해 푸른 바다 위로 펼쳐진 또 하나의 금강산이었다.

조선의 위대한 화가 겸재 정선은 금강산을 여행하며 <해금강><총석정><통천문> 같은

불멸의 작품을 남겼고 임금의 사랑을 받았던 김홍도 또한 <<을묘년화첩>>에 한국회화사에 영원히

남을 <총석정도>를 그렸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앞다투어 해금강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동해바다에 연해 우뚝 솟은 국지봉과 아홉 신선이 산다는 구선봉.

그 앞으로 거북이처럼 바다위에 떠있는 작은 섬 송도.

말무리반도는 이들 봉우리와 송도 사이로 자락 하나가 길게 뻗어나간 것이었다.

파도가 밀려드는 금빛 모래를 따라 걷다보면 어느 새 닿을 거리지만 군사분계선에 가로

막혀 갈 수 없는 곳.

그 곳 역시 여기 통일전망대에서처럼 붉은 해당화가 피어나겠지.

나와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이 오순도순 살고 있을 테지.

어쩌면 누군가 말을 씻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히이잉. 어디선가 들려오는 말울음소리와 말발굽소리.

나는 어느새 말무리에 섞여 하얀 포말이 부서지는 푸른 바다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검은 갈기 휘날리며 달리는 말 잔등에 올라.

::저자 정용연은

1968년생

멀리 모악산이 바라다보이는 김제 들녁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다. 청소년기는 서울 청량리에서, 성인이 된 뒤에는 서울?경기 지역에서 살았다. 이십 대 초반, 백성민 선생 문하에서 1년 동안 만화 수업을 받았고, 이십 대 중반에 만화 운동 단체인 <작화 공방>에서 잠시 활동했다,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중후반까지는 만화 외 일들을 했으며, 이후 창작 만화를 그리고 있다.

작품목록

<주간 만화>에 단편 만화 '하데스의 밤'으로 데뷔.

월간 <민족 예술>, 월간 <참여와 혁신>, <한겨레신문>에 만화 연재.

다큐멘터리 만화 <사람 사는 이야기> 1,2에 '나무 이야기' 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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