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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4-09-13 15:00
다운증후군 은혜 영화 주인공 되다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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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김종범
조회 : 2,299  

“엄마, (영화) 촬영해?”

설핏 잠의 나락에 떨어진 열네살 소녀 은혜는 로봇처럼 일어나곤 했다. 그리고 지난 5일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의 밤샘촬영이 끝날 때까지 투정 한 번 부리지 않고 연기를 했다.

지난해 ‘여섯 개의 시선’을 제작했던 국가인권위원회의 두번째 인권영화 프로젝트가 촬영 중인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 부근 마을. 여기는 바로 은혜와 만화작가 엄마 장차현실씨가 사는 집이다. 류승완 박경희 정지우 장진 김동원 감독이 나름의 시각으로 ‘차별’을 다루는 옴니버스 연작 중 박경희 감독의 영화 ‘언니가 이해하셔야 돼요’가 이곳에서 지난 5일 촬영을 마쳤다. 박 감독이 은혜의 일상을 취재해 시나리오를 쓰고 찍은 작품이다.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연기파 배우 서주희씨가 은혜의 엄마로 출연한 ‘언니가’ 촬영현장.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고운 사춘기 소녀의 모습이 화면에 비친다. 카메라가 클로즈업되는 순간 눈을 찡그리면서 더듬더듬 힘줘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일순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은혜는 만화작가 엄마 장차현실(40)씨가 그려낸 만화 ‘엄마, 외로운 거 그만하고 밥 먹자’를 비롯해 각종 신문과 잡지에 앙증맞은 만화주인공으로 연재되며 알려진 다운증후군 소녀. 드라마를 보면서 흉내내는 것을 즐기고, 상상속의 친구를 만들어 ‘친구놀이’를 했던 은혜의 꿈 중 하나는 배우다. 엄마 장씨는 “영화 ‘제8요일’의 주인공도 다운증후군을 가졌지만 연극배우였다죠. 은혜가 연기하기를 좋아하고 재능도 있으니까 연극배우가 돼도 좋겠어요.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동화되지 못하고 인정 못 받는 은혜가 자신 안에 여러 사람의 모습이 있기를 동경하는 게 아닐까 싶거든요.”

장애를 가진 딸의 이야기를 유쾌한 만화로 풀어내면서 엄마 장씨가 세상과 소통의 출구를 발견했던 것처럼, 은혜는 연기를 발견한 것일까. 은혜는 촬영이 이뤄진 그 1주일간 화장실에 앉아서 기도를 하곤 했다. “연기를 잘하게 해주세요”라고.

‘ 여섯 개의 시선’에 이어 이번 인권 프로젝트의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이진숙 프로듀서는 은혜의 재능과 열정에 대해 놀랐다고 했다. “촬영 전에 100% 대사를 다 외우고 반복되는 촬영에 임하는 은혜를 지켜보는 과정 자체가 스태프에겐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감동을 줬습니다.

우리들보다 다소 느리고 어눌하지만, 은혜만큼 순수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뛰어들 수 있을까, 스태프가 원초적인 자신을 돌아보는 신기한 경험을 했던 거예요. 삶의 진심과 리얼리티의 감동은 영화가 개봉하기도 전에, 우리 안에서 이미 시작된 셈이지요.”

영화는 경쟁조건이 최우선시되는 한국 사회에서 경쟁조건에 맞춰질 수 없는 장애인의 일상을 과장없이 담았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이들을 의식적으로 배려하지 않고는 이들에게 얼마나 상처를 입힐 수 있는지, 경쟁관계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장애인이 오히려 얼마나 순수한 직관력을 소유한 존재인지를 비춘다. 은혜의 이웃집 아주머니로 직접 영화에 출연하게 된 신인숙(56)씨는 “은혜를 위해서라면 부끄럽지만 과감히 이빠진 내 늙은 모습을 화면에 드러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처음이 낯설어서 그렇지 은혜와 1시간만 같이 있어 보세요. 이런 천사가 없어요. 어떤 편견없이 사람과 사물을 관통해서 보는 눈이 있어서 메시지를 툭툭 던지는데, 그냥 빨려들어갑니다. 은혜는 제 가장 친한 친구예요.”

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신인숙 아주머니에게 줄 거라며 뜨개질하는 손을 쉬지 않고, 식탁 앞에서는 반찬 가짓수만큼 ‘드셔 보세요’를 말하는 은혜. 장씨는 밤새 원고 마감을 하고 있으면 라면을 끓여 들여오는 딸 은혜의 따뜻함 때문에 견뎠다고 했다. “제가 원래는 되게 팍팍한 사람인데 은혜가 감싸주니까 숨쉬고 살아요.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모른 척하자, 은혜는 반갑게 인사를 하더라고요. 제가 얼마나 부끄럽던지요. 다운증후군 아이들은 대개 따뜻하고 낙천적인데, 보통은 그 장점을 못 살려준 채 주눅들게 키우기 마련이잖아요. 장애아이를 드러내기가 싫으니까요. 저는 어디를 가든 은혜를 데리고 다녔어요. 영화촬영 제의가 왔을 때도 처음에는 망설였는데, 결과적으로 은혜가 많이 성장하고 사회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외국 여행을 비롯, 장씨는 친구와 동료들이 모이는 자리에 은혜를 데리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엄마와 친구처럼 붙어 다니는 딸은 때로 ‘엄마의 엄마’다. 은혜는 독신엄마의 남자친구를 왕자님이라고 불러주고, 엄마에게 술담배를 끊으라, 민소매 옷은 노출이 많으니 입지 말라고 ‘훈계’하는 잔소리꾼이다. 은혜의 배려깊은 마음은 힘들게 얻은 자립심의 뒷면과 같은 것이다. 은혜는 인터뷰 도중 성급한 기자를 위해 장씨가 부연설명을 해줄라치면 “엄마, 통역하지 마”라며 눈을 흘겼다. 외출하는 엄마의 자동차 옆에서 ‘들어가라’는 말에 끄떡도 하지 않는다. “오라이 해주려고” 그런단다 .

‘언니가 이해하셔야 돼요’는 이번 인권영화 프로젝트 2탄 촬영이 완료된 후 내년 봄쯤 극장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장차현실씨는 은혜를 키우면서 일어난 일상의 에피소드를 담은 만화 ‘별아이 현실엄마’를 본지에 연재 중이다.

◇경기도 양수리에 있는 집에서 단란한 한때를 보내고 있는 어머니 장차현실씨와 은혜양.

김은진기자/jisland@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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