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영씨 ‘임꺽정’ 첫 IS연재
시작한 72년 출생 최훈씨 “선생님 작품 보며 키워온 만화가
꿈 ‘하대리’로 첫 결실”
▲처음엔
고우영 씨와 최훈 씨의 만남을 기획했습니다만, 암투병 중인 고우영 씨의 건강 문제로 사이버 대담 형식으로 바꾸었습니다. 두 번이나 암을 이겨낸
고우영 씨가 쾌차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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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 연재작 <하대리> 만화가 최훈 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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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가 있었기에 오늘이 있고, 내일도 있다.
일간스포츠(IS)의 어제와
오늘을 대표하는 만화가 고우영 씨(66)와 최훈 씨(32)가 사이버 상에서 만났다.
고 씨가 일간스포츠에서 <임꺽정>
연재를 처음 시작한 것은 1972년 1월 1일. 그는 일간스포츠 연재를 통해 무명 작가에서 일약 '국민 만화가'로
떠올랐다.
<하대리>를 일간스포츠에 연재하고 있는 신세대 인기만화가 최훈 씨는 1972년 생. 그가 만화가로서 첫 발을
내디딘 곳 역시 일간스포츠다. 어릴 적 고 씨의 만화를 보고 만화가의 꿈을 다진 그에게 고우영이란 존재는 각별하다.
일간스포츠 창간
35주년을 맞아 대작가 고우영 씨가 까마득한 후배와 컴퓨터에 마주앉았다. 일간스포츠로 맺어진 이들은 과연 어떤 사연을 갖고
있을까.
▲ 고우영 = 최군, 자네가 세상에 태어나던 그 해 나는 새로운 인생을 맞이했네. 당시 내
나이는 지금 자네와 비슷한 34세였거든. 그 때까지 삶은 정말로 고달팠고 배고팠네. 20대부터 나이 어린 동생들을 거느린 청년 가장인데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무명 작가였지. 그래도 좌절하지 않았어. 암담한 현실 때문에 정신을 잃을 정도로 술을 마시곤 했지만 언젠가 내 그림을 알아주는
때가 오겠지라는 마음으로 살았다네. 고마운 것은 일간스포츠가 나를 삼고초려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주었다는 점이지. 연재에 부담을 느끼고 세 번이나
거절한 나를 붙잡아주었지. 나와 일간스포츠는 함께 커 나갔어. 시간이 지나고 나니 나도, 일간스포츠도 부쩍 커버렸더군. 지금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모두 어려운 시절이네. 밑바닥까지 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지.
▲ 최훈= 저의 오랜
우상과 대화를 하게 돼 영광입니다. 선생님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 만화를 그리지 않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선생님 작품은 어릴 적부터 빼놓지 않고
다 봤거든요.
▲ 고우영내 작품 중 기억 나는 게 있나?
▲ 최훈= <삼국지>에는
정말 추억이 많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1981년) 사고를 당해 한 쪽 눈 수술을 받고 강남성모병원에 두 달 동안 입원했습니다. 한 쪽 눈만
가리고 있으니 어린 것이 얼마나 심심했을까요. 그 병원 매점에선 <삼국지> 전권을 다 팔았는데, 그것이 그 유명한
<삼국지> 무삭제 판이었지요. 그 다음부턴 단행본이 심의에서 완전히 난도질당한 것 기억하시죠. 아버지를 졸라 병원 매점에서
<삼국지> 무삭제 판을 사서 퇴원할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 읽었죠. 그 덕에 시간이 금방 가 쉽게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관우의 혼령이 조조에게 나타나는 장면이 너무 무서워 스카치 테이프로 그 부분을 봉인해 버리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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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 그때는 나도 너무 열정적이었지. 원고를 그리다가 밤을 꼴딱 새워도 행복하기만 했지. 온몸의 에너지를 다 태웠어.
▲ 최훈= 70년대 말 소년지 새소년에 연재하신 <짱구박사>가 처음 접한 선생님의 만화였습니다.
명랑만화체의 그림이 생각납니다. 너무 재미있어 정기 구독을 소년중앙.어깨동무에서 소년중앙.새소년으로 바꾸어버리기까지 했지요. 그 다음엔 최배달을
그린 <대야망>을 클로버 문고판으로 접했습니다. 최배달의 일본 제자가 태권도를 배우고 나서 암흑가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제자는 밭에 버려진 배추 껍데기를 주워 "우리 스승님이 먹는 거야"라며 김치를 담더군요.
일본
아이들도 김치를 맛있게 먹어치우지요. 저는 어릴 적 종종 혼자서 김치 하나 놓고 밥 먹곤 했는데 그 장면을 기억하며 밥과 김치를 다 먹었습니다.
▲ 고우영= 약 19년에 걸쳐 연재를 하다 보니 내 청춘이 일간스포츠와 함께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말 못할
애증도 있었고. 자네도 일간스포츠와 관련한 기억이 있나?
▲ 최훈= 아버지가 무척 만화를 좋아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법대 출신인데 만화 보다가 고시 패스를 못했다고 말할 정도였지요. 1980년 무렵인 것 같은데 아버지는 스포츠와 선생님 만화를 보기
위해 일간스포츠를 구독하셨습니다. 아버지 덕에 집에서 매일 <서유기> <열국지> <초한지> <흑두건>
<가루지기전>를 보던 기억이 납니다. 선생님 특유의 웃긴 말투가 너무 많았습니다. 말풍선 밖에 낙서 하듯 조그맣게 써놓은 글들이
오히려 더 재미있었지요. 저의 만화는 선생님의 글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지금도 글 쓸 때 그런 표현이 무의식적으로 툭툭 튀어나오거든요.
▲ 고우영= 나도 매일 집으로 오는 일간스포츠를 통해 자네를 만나고 있지. 자네 만화는 세련된 감각이 돋보이더군.
역사는 수레바퀴 같은 것이야. 지금은 내 자리를 후배들이 대신하고 있지 않은가. 앞으로 역사를 써나가는 것은 자네들의 몫이라네. 내 건강이
좋아지면 술이라도 한 잔 하세.
고우영 일간스포츠 연재작(1972~1991)
<임꺽정>
<해동일룡>
<세계일주> <꽃네별네> <일지매> <삼국지> <서유기>
<열국지> <초한지>
<흑두건> <가루지기전> <고전열기> <바니주생전>
<똥길이
홍> <중국귀신> <거인야사> <통감투>
최훈
일간스포츠 연재작(2002년 부터)
<하대리>
장상용 기자 <enisei@ilg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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