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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4-08-30 12:55
판타지와 만난 고전 '신암행어사'(오마이뉴스)
 글쓴이 : 김종범
조회 : 2,534  



시대를 알 수 없는 그 옛날, '쥬신'이라는 나라에 '암행어사'라 불리는 비밀 요원이 있었다. 암행어사는 이름 그대로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나그네 행세를 하고 온 나라를 돌아다니며 못된 영주를 벌하는 특수 경찰이었다.
 
그러나 쥬신의 붕괴와 더불어 상명하복에 철저한 관료 사회도 붕괴하기에 이르러 암행어사는 사라지게 된다. 이에 따라 각지의 봉건영주들은 더욱 기승을 부리며 백성들을 괴롭히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게 된다. 그들을 응징하고자 과거 쥬신의 장군이었던 '문수'는 암행어사를 자청하며 유령군사를 부릴 수 있는 특수 마패를 가지고 패국의 방방곳곳을 돌아다니며 활약한다.
윤인완이 시나리오를 맡고, 양경일이 그림을 그린 만화 <신암행어사>는 기존에 나와 있는 동시대의 만화들과는 다르게 주 모티브를 고전으로부터 가져왔다. 또 만화의 중심이 되고 있는 에피소드도 <어사 박문수 이야기> <춘향전> <고려장> 등 주로 고전에서 차용했다.

만화의 주요 등장인물들도 대부분 설화나 고전에서 활약하던 인물들이다. 문수(어사 박문수 이야기), 산도 춘향(춘향전), 원술(원술랑), 아지태(허준 이야기)등이 그 예다.

하지만 <신암행어사>는 단순히 고전만을 바탕으로 만든 만화가 아니라 고전이라는 바탕 위에 판타지 요소들을 가미해 만든 아주 맛깔나는 판타지 극이다.

만화의 주요 무대라고 할 수 있는 '쥬신'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곳에 인간과 마물이 공존하는 세계와, 뛰어난 무예를 지닌 무사들과 강력한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들이 활약하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는 우리가 평소에 접해오던 판타지에서 보아온 전형적인 세계관의 한 특징으로 볼 수 있다.

판타지 요소는 극의 전개뿐만 아니라 만화 속에서 등장 인물 하나하나에도 섬세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령군사를 부릴 수 있는 마패를 가지고 활약하는 문수와 자신의 몸길이만 한 거대한 검을 가지고 다니며 강력한 마물들과 무예가 뛰어난 무사들을 상대하는 슬레이어 춘향의 모습은 판타지에서 익숙하게 보아온 면모다.

고전과 판타지의 결합이라는 퓨전적인 풍미는 극 전체를 이루는 장르의 풍성함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판타지와 고전극에 액션을 가미하고 약간의 코믹과 멜로를 합쳐 이뤄낸 이른바 짬뽕극이 <신암행어사>의 실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 배합이 매우 적절하여 독자에게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윤인완-양경일 콤비의 훌륭한 조합

<신암행어사>를 두고볼 때 특이한 점은 스토리를 맡은 작가와 그림을 맡은 작가가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더욱 눈여겨 볼 것은 이 둘의 조합이, 이야기와 그림 모두 혼자서 소화해내는 작가 이상으로 훌륭하다는 것이다.

윤인완이 맡은 스토리는 판타지 액션이라는 작품의 전체적인 장르에 걸맞게 매우 흥미진진하다. 즉 곳곳에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시키는 플롯이 잔뜩 있으며, 그 플롯들은 보는 이의 뒤통수를 여러 번 칠 만큼 가늠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자면 <신암행어사> 1권에서 어사인 문수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그 누구라도 어사 같아 보이는 악덕 영주와, 그저 질이 좋지 않은 영주의 끄나풀로밖에 보이지 않는 어사 문수를 구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신암행어사> 3권에서 4권에 걸쳐 있는 '용로에 피는 꽃'이란 에피소드에서 단순히 힘없는 양민으로만 보이던 사람이 알고 보니 도시에 잠입한 또 한 명의 어사였다는 점, 적들의 텃세에 힘이 부친 산도가 큰 부상을 입고 피해 있는데 그 때 만난 의사가 문수가 그토록 증오하는 아지태였다는 설정 등등 작품 곳곳에 뜻밖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이렇듯 예측을 불허하는 윤인완의 이야기에 결합된 양경일의 그림은 만화 속에 마치 어떤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개연성을 부여할 만큼 적절하며 일본 작가들에게 절대 뒤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

특히 작품 속에서는 어두운 이미지들이 많이 등장해 명암의 대조가 극명한데 이는 <신암행어사>만의 독특한 그림체를 형성하여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다. 또 여러 가지 장면 중에서 극중 인물들이 펼쳐내는 액션신은 압권이라 할 만큼 뛰어나다.

훌륭한 시나리오에 수려한 그림체, 이 둘의 결합이라는 한 가지 사실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신암행어사>가 선사하는 재미가 두 작가의 탄탄한 실력과 더불어 이들의 훌륭한 조합이 만들어낸 공동의 열매라는 점이다.

가능성 있는 만화 <신암행어사>에 바란다

<신암행어사>는 실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그 이유는 우선 국내에 <신암행어사>를 단일 주제로 한 커뮤니티가 여러 개에 이를 정도로 이 만화를 사랑하는 팬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다음으로 이 작품은 일본의 메이저 만화 잡지라고 할 수 있는 <선데이GX>에 연재되고 있으며 일본에서 단행본 8권까지 150만부 넘게 팔렸다는 점이다. <신암행어사>는 이에 그치지 않고 홍콩까지 판로를 개척했으며 오는 10월 한-일 합작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개봉된다고 한다.

여태껏 국내시장에서조차 일본만화에 밀려 빛을 보지 못하던 많은 한국 만화 사이에 <신암행어사>는 대단히 이례적인 경우다. 그만큼 <신암행어사>가 인정받는 이유는 그 작품성이 뛰어나고 대중적인 재미를 가미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보고 있는 재미있는 한국 만화가 세계 속에서 호평을 받고 읽힌다는 사실 자체만 봐도 누구나 뿌듯함을 느낄 것이며 그 만화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신암행어사>가 내포한 한국만화의 가능성과 더불어 표면적으로 드러난 몇 가지 한계점도 지적하고 넘어가야겠다. 그것은 이 만화가 외면상으로는 한국적 소재를 가지고 나름의 스타일을 구축했다고는 하지만 국내 독자든, 타국의 독자든 과연 받아들일 때 액면 그대로 한국 작품으로 받아들일까 하는 문제다.

그만큼 <신암행어사>에 나타난 세계는 꼭 한국의 그것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국적을 알 수 없이 뭉뚱그려져 추상적이다. 그리고 그 추상적인 세계가 일본풍에 가깝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문제점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만화 속에 스토리 작가 윤인완은 고전에서 차용해 온 많은 설화들과 인물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화(話)가 넘어가는 지점에 부연 설명을 덧붙이고 있는데 이 점은 말 그대로 스토리나 작품 속에 등장한 인물들의 원천적 모티브를 설명하는 것뿐이지 그렇다고 해서 그 이야기나 인물들이 그 자체로 한국적인 고전이나 정서를 설명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하기엔 몇몇 캐릭터와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일본 캐릭터와의 유사점이 걸리고, 개연성 없는 노출이 심하다는 점에서 일본 만화의 특징과 정서에 부합하는 점이 있다.

즉 <신암행어사>가 매우 뛰어난 작품성을 가지고 있고 그에 응당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으나, 작품내내 일본 만화에서 본 것 같은 설정이 있다는 것도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또 <신암행어사>가 고전을 만화에 적용시켜 '재구성'했다는 시도 자체 역시 높이 평가받아야 마땅하나 여기서 조금 더 욕심을 부린다면 단순히 극을 이끌어나가는 도구로써 고전을 끌어올 것이 아니라 극의 중심이 되는 하나의 정신문화로 고전을 '재해석'하여 우리네의 정서와 정신까지 담아낼 수 있는 만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서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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