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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5-04 20:41
'빈곤', '국가보안법', '부안 사태' 외면 않는 어린이 인권 교과서 출간 (프레시안)
 글쓴이 : 김종범
조회 : 3,032  
1992년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당당하게 인권을 누리는 세상을 꿈꾸며 인권운동을 시작한 인권운동사랑방과 진보적인 어린이 만화 교양지를 표방하며 2003년 10월부터 <고래가 그랬어>를 펴내온 출판사 야간비행이 주목할 만한 결과물을 내놓았다. 어린이를 위한 만화 인권 교과서 <뚝딱 뚝딱 인권 짓기>(인권운동사랑방 지음, 윤정주 그림, 야간비행 펴냄)가 바로 그것. 이 책은 <고래가 그랬어> 창간호부터 연재해오던 인권 만화를 묶어 펴낸 것이다.

인권운동사랑방이 만든 만화 인권 교과서, <뚝딱 뚝딱 인권 짓기>

<뚝딱 뚝딱 인권 짓기>는 2백80쪽 가까운 분량에 차별, 환경, 폭력, 교육, 민주주의, 복지, 사생활 등 결코 만만치 않은 인권 문제들을 그림일기에서 튀어나온 듯한 만화 같기도 하고 회화 같기도 한 윤정주의 친숙한 만화로 풀어내고 있다.

책의 첫 장에는 한국인 엄마와 미국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얼굴이 까맣고 머리카락이 곱슬거리는 미나의 초등학교 입학식 풍경이 펼쳐진다. 학부모들은 수근거리고 아이들도 덩달아 힐끔거리는 와중에 급기야 미나 짝꿍은 "얘는 피부도 까맣고 머리카락도 이상해…", 하면서 울음을 터뜨린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큰 상처를 입은 미나와 걱정스럽게 그를 보는 한국인 엄마. 바로 단지 '차이'를 이유로 불이익을 주거나 따돌리고 놀리는 '차별'을 설명하기 위한 설정이다.

하지만 이 책은 아이들에게 인권 문제를 가르치기보다는 스스로 깨닫게 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앞에서도 차별이 잘못됐다고 바로 가르치기보다는 오히려 다른 질문을 던진다. "미나가 친구들 때문에 큰 상처를 입었듯이, 여러분도 미나처럼 상처를 받은 적이 있나요?"

이 질문 뒤에 '똑같이 지각을 했는데도 성적이 나쁘다고 큰 벌을 받은 일', '아들이라고 오빠만을 좋아하는 할머니에게 섭섭한 일', '부산에서 서울로 전학 갔다 사투리 때문에 놀림 받은 일' 등 아이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보고 겪었을 차별의 예들을 배치해 자연스럽게 인권 문제를 자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쉬지 않고 일해도 가난한 사람들 넘치는 세상, 가난은 게을러서 생기는 게 아니에요"

어린이를 위한 인권 만화라고 해서 무게감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책을 넘기다보면 어른들이 화들짝 놀랄 만한 대목이 눈에 띈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의 비정규직 법안 수정 요구에 정부, 재계, 언론 등이 반발한 것에서 잘 드러나듯이 경제 규모에 걸 맞는 인권 의식을 축적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기형적인 현 주소 탓이다.

예를 들어 이 책은 '가난'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 '쉬지 않고 일해도' 부분에 나온 하경이 아빠의 안타까운 사연을 보자. 평생을 건설 현장에서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해 온 하경이 아빠는 결국 열악한 작업 환경 때문에 사고를 당해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일을 하다 다쳤지만 회사는 약간의 병원비만 지급해 줄 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결국 많은 치료비 때문에 하경이 가족은 그 동안 모아 놓은 돈을 다 쓰고 또 빚까지 지게 되었다. 이런 하경이 아빠의 사연을 이 책은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가난은 게을러서 생기는 것이 아니에요. 어떤 사람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지만 다른 일에 비해서 월급을 너무 조금 받기 때문에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어요. 또 기술이 없는 경우 선택할 수 있는 일도 적어서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경이 아빠가 열심히 노력을 하지 않아서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못 간 탓이라고 눈을 부라리는 어른들이 있다면 다음 대목을 읽어보자. 교육권을 소개하고 있는 '돈 없이도 배우고 싶어요' 부분에서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미나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민호가 나온다. 민호가 공업 고등학교를 졸업해 바로 공장해 취직한 몇 년 뒤 미나는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 민호네 회사 본사에 취직한다. 물론 "미나가 취직하기 몇 년 전부터 일을 했지만 민호의 월급은 미나와 별로 차이가 없다."

"부안 사람들의 저항은 맑은 세상 바라는 간절한 외침이에요"

이 책은 국가보안법이나 '부안 사태'와 같은 민감한 현안 역시 피해 가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를 빼앗겼어요' 부분에는 신학철의 <모내기> 그림이 다뤄진다. "1987년 화가인 신학철 아저씨는 <모내기>라는 그림을 그렸어요. 그런데 국가에서 그림의 내용이 문제가 돼 조사를 해야 한다며 아저씨의 그림을 가져갔어요. '북한 농부는 풍성한 모내기에 행복해 하고 있는데 남한 농부는 허리가 휘도록 일하고 있어…북한이 남한보다 좋다니 이건 북한을 찬양하는 거야…고소하자', 신 아저씨는 10년이 넘게 재판에 시달려야 했어요. 결국 신 아저씨의 그림은 아무나 쉽게 볼 수 없게 됐어요. 나라에서 아직도 그림을 돌려주지 않기 때문이에요." 검찰이 몰수해 16년째 보관 중인 신학철의 <모내기>는 최근 <태백산맥> 등에 대한 검찰의 무혐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검찰의 공안 자료실에서 훼손되고 있는 실정이다.

'부안 사태'를 다룬 부분도 인상적이다. 여느 책들처럼 부안 주민들의 반대 운동을 '지역 이기주의'로 매도하지 않는다. 대신 정부와 부안군수가 주민을 배제한 채 핵폐기물처리장을 강행하는 과정의 비민주성을 폭로하고, 주민들의 반대 운동을 정당한 저항으로 자리매김한다. 문제의 근원인 원자력 발전의 문제점을 짚고 풍력, 태양광과 같은 재생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 책의 강점이다.

마지막으로 생태ㆍ환경을 언급의 책의 한 부분을 그대로 옮겨본다. 이런 교과서로 세상을 보는 눈을 기른 아이들이 많아질수록 희망이 넘쳐날 것이다. 오는 어린이날에는 아이들에게 <뚝딱뚝딱 인권 짓기>를 선물로 주는 게 어떨까? 예전에 거리에서 민주화를 외쳤던 마음을 모아 아이들과 한 장 한 장 같이 읽어도 좋겠고.

"이익을 얻기 위해 환경을 파괴하고 위험한 물질을 만들어내는 것은 사람을 위한 개발이 아닙니다. 특히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오염된 환경으로 몰아넣는 개발은 반대해야 하겠지요.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맑은 물, 맑은 공기, 곡식이 잘 자랄 수 있는 땅 같은 깨끗한 환경이 필요해요. 이런 환경은 돈이 많거나 적거나 상관없이, 그리고 힘이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강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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