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원씨 작품집 ‘나른한 오후’
올해 만화계에 가장 의미있는 ‘사건’ 가운데 하나는 일간지가 주최하는 신춘문예에 처음으로 만화부문이 생겼다는 사실이다. 그 당선 주인공인
마정원(25)씨의 작품을 엮은 <나른한 오후>(샘터 펴냄·8천원)가 나왔다. 일단 당선작인 ‘과꽃’을 포함, 우리 이웃에 대한
따뜻하고도 섬세한 시선이 책 전체를 관통하며 고른 질을 유지한다는 게 눈에 띤다. 지나치게 엄숙하지도 않다.
아버지가 자살한 뒤 의지할 데 없는 남매는 옆집 할아버지의 보호를 받는다. 할아버지는 어느 날 등에 칼을 맞고 죽은 채 발견되지만 그 시간
남매는 나타나지도, 슬퍼하지도 않는다. 이웃은 은혜를 모른다고 남매를 헐뜯지만 실상은 다르다. 이 사회의 위선 앞에서 남매는 “누나 우린
(아빠처럼) 그러지 말자…. 둘이서 꼭 행복하게 살자…”되뇔 뿐이다.(‘나른한 오후’) ‘과꽃’은 반전의 묘미가 잘 살아있다. 아이를 잃은
엄마의 슬픔을 담기에 만화는 작은 그릇일 뿐이지만, 의식의 흐름조차 필선으로 담으려는 작가의 집념은 돋보인다. 화면을 다양한 각도에서 담는
손길도 그렇다. 물론 다음 쪽 그림(내용)이 예측 가능하다거나, 단편이라는 틀에서 ‘낙관적 결말’로 급회전할 수밖에 갈무리가 숨 가빠 보인다.
신인과 독자 사이에 존재하는 ‘허니문 기간’안에 충분히 다듬어질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다.
그간 신인상을 주는 만화관련 상은 70년대의 신인아동만화상, 90년대의 ‘대한민국만화대상’, 지지난해 시작된 ‘독자만화대상’ 등 손으로
꼽는다. 하지만 이들에게 신진 발굴 개념은 없다. 이미 인기를 얻으며 기성작가군에 들어선 젊은 작가들을 격려하는 성격이 강했을 뿐.
만화잡지사에서 추진된 게릴라식 신인상 공모 역시 해당 잡지를 채우기 위한 자구책 일환이었다. 당연히 ‘폭소’가 담보된 작품만이 대중을 만나게
된다. 가장 권위 있다고 평가되는 ‘대한민국만화대상’조차 대중성과 예술성이라는 잣대 사이에서 부유하는 현실이다. 방향이 뚜렷하지 않은 신인상은
일반의 공모전과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이를 독자가 직접 가늠해볼 좋은 기회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