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4-09-17 17:29
장상용 만화 vs 영화] 바람의 파이터 (일간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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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종범
조회 : 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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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첫마디가 인상적이다. "나는
고독했고 매 승부마다 두려웠다."
특수 샌드백을 한방에 'ㄱ'자로 꺾어버리고 맨손으로 황소 뿔을 따버리며 은퇴할 때까지 패배한
적이 없다는 철인 최배달이 그런 고백을 하다니. 그에게도 과연 두려움이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나 엄청난 액션 활극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의아해할지 모르겠다.
방학기 씨의 만화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 <바람의 파이터>에 원작자의 의지가 상당히 반영됐음을
직감했다. 지난해 방영된 TV 드라마 <다모>가 시종일관 애정행각으로 원작자 방학기 씨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우선 만화 원작으로 돌아가 보자. 만화 <바람의 파이터>에 모티프를 준 작품은 1977년 소년지
<새소년>에 연재된 고우영 씨의 <대야망>이다. 짧은 에피소드들을 나열하는 형식으로 구성된 <대야망>은 최배달이
자랑스러운 한국인임을 강조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그러다 보니 최배달의 내면 세계를 깊이 보여주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더구나 연재 매체가
소년지임을 감안하면.
그것을 극복한 것이 1989년 신문 연재된 <바람의 파이터>다. 불패의 파이터가 되기까지 고통과
내면의 고독을 그려냈다. 원작자는 평소 영화가 활극이 되기보다는 파이터의 내면을 보여주길 바랐다. 영화는 그 점을최소한 의식은 한 듯싶다.
영화는 원작과는 전혀 다르게 구성됐다. 매체가 다른 이상 그대로 연출할 필요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유우코라는 게이샤와의 사랑
이야기와 일본 무도인 가토와의 라이벌 관계를 통해 갈등을 설정했다. 영화는 일본 밀항, 미군 때려눕히기, 입산수도, 도장깨기, 료마의 처와
아들에게 사죄, 가토와의 최후 대결 등으로 흘러가다가 황소 뿔을 자르는 몇 초짜리 컷으로 무난하게 마무리됐다. 양동근의 연기도
좋았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불만이 좀 생겼다. 영화를 못 만들어서 그렇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과연 최배달의 인생 이야기를
길어 봐야 2시간짜리 영화에 담을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도장 깨기만 해도 너무나 재미있는 상대가 많다. 닌자와 유도 고수를
비롯 각 지역의 고유한 무술을 대표하는 캐릭터들이 넘치는데, 그 대결들이 스포츠 하이라이트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실제로 최배달은 황소와
대결하기 전에 엄청난 시행착오와 연습을 거쳤다. 황소 이야기도 할 사이가 전혀 없었나 보다. 맨 마지막 황소 장면은 이걸 안 다루면 나중에
욕먹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면죄부 용으로 장식해 놓은 듯싶다.
영화라는 틀 자체가 이 이야기의 사이즈에 안 맞는 옷 같다.
<바람의 파이터>를 TV 드라마로 보고 싶다는 욕구가 용솟음친다.
장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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