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우만연 웹진 > 문화계 소식  
 
작성일 : 04-09-06 16:53
日 동인만화시장 이해<1/2>-코믹마켓 참가기 (콘진)
 글쓴이 : 김종범
조회 : 2,675  
일본의 만화시장을 이야기할 때 '어느 만화 단행본이 몇 천만 부 팔렸다'느니, '어떤 잡지가 몇 백만 부의 신화를 세웠다'느니 하는 식의 만화시장 전체규모에 대한 설명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 중에서 간혹 '일본에서는 동인만화를 그려서도 떼돈을 벌 수 있다', 혹은 '동인지를 팔아서 집도 사고 차도 산다'는 식의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그런 소문의 중심에는 세계 최대규모의 만화 이벤트 '코믹마켓'이 존재한다. 1년에 두 번, 여름과 겨울에 개최되는 이 만화동인지 판매전에는 한 번에 약 3만5000여 서클이 자신들의 아마추어 동인지를 판매하기 위해 참가하고, 전체적으로 약 50만 명에 이르는 인원이 방문하는 행사다. 총면적이 무려 23만m²인 일본의 대표적 전시장 도쿄국제전시장(도쿄 빅사이트) 전체를 사흘동안 빌려 개최하는 것만으로도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코믹마켓'은 일본 동인만화계를 이해하는 데에 필수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동인시장을 이해하기 위하여 우선 코믹마켓, 약칭으로 '코미케'라 불리는 이 동인지 판매전의 현황을 알아보고자 한다.

'코믹마켓'은 1975년에 제1회가 개최된 후 2004년 여름 66회를 맞이할 만큼 역사가 오래 되었다. 2005년에는 '코믹마켓 30주년 기념'으로, 봄에도 행사를 열기로 하여 그 준비 작업이 한창이다.

경쟁 뚫고 참가자격 획득...한국만화 소개

필자는 한국만화를 일본에 소개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직접 서클참가하려고 마음먹고 드디어 66회 코믹마켓에 서클명 'mirugi-com.'(미르기 컴필레이션)으로 응모, 당선되어 참가자격을 따냈다.

보통 코믹마켓은 약 5만개 서클이 참가 신청을 하는데 그 중에서 3만5000개 서클만이 참가자격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독자가 많은 기존 인기서클에 우선적으로 참가자격을 주는 정책 탓에, 신규 서클은 참가 신청을 해서 당선될 확률이 약 30%에 불과하다고 한다.

필자의 서클은 아마도 한국에서 참가하는 서클이라는 점에서 일단 특이하고, 필자 자신이 최근 일본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한다는 점, 특히 9월 11일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의 일본관 전시에 '코믹마켓 준비위원회'와 함께 참여작가로 초대받은 사정도 있어서인지 꽤나 쉽게 당선되었다.

또 첫 참가 서클치고는 상당히 드물게 기존의 인기 서클만이 차지할 수 있는 '벽에서 가장 가까운 외부 자리'를 배정받았다. 한국에서 코믹마켓에 참가한 서클이 그동안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첫 참가부터 우대를 받은 경우는 많지 않을 것 같다.

코믹마켓 행사장에서 인기서클의 부스는 밖으로 향하는 문이 있는 벽쪽으로 모아 배치된다. 손님이 많이 몰리는 서클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긴 줄을 이벤트 회장 내부가 아니라 바깥으로 빼기 위해서다. 이것은 50만명이 넘을 정도로 너무나도 많은 참가 인원 탓에 최대한 많은 인원이 붐비지 않고 사고 없이 행사를 치르기 위한 코믹마켓의 여러 노하우중 하나다.

동인지에 패러디 작품 많아

코믹마켓은 대부분의 참가서클이 패러디 동인지를 들고 나온다. 오리지널의 만화나 각종 평론지, 동인지가 아닌 동인게임 등의 소프트웨어, 각종 굿즈 등 여러 종류의 동인상품이 등장한다. 하지만 역시 매회 열리는 코믹마켓 전체의 90% 가까이를 점유하는 것은 단연 여러 애니메이션, 만화 작품의 패러디 동인지다.

필자의 서클도 첫 참가이고 하니 역시 기존 작품의 패러디를 들고 나갔다. 한국에서 참가하는 서클로서 일본 작품의 패러디를 처음부터 내놓는 것도 조금 곤란하다고 생각해서 일본에서도 인기 높은 한국게임 '라그나로크 온라인'의 패러디 동인지를 내기로 결정했다. 이 패러디 동인지에서는 필자가 잘 아는 한국인 작가들을 섭외해서 참가시켰다. 만화를 못 그리는 필자는 편집과 만화원고를 '일본화'시키는 작업을 맡았다. 단순히 일본어로 번역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평범한 독자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출판 제작의 모든 기법을 일본에 맞춘 것이다. 그 밖에 서클참가의 본래 목적이기도 한 한국만화계를 소개하는 정보지 '한국만화 가이드북'을 같이 갖고 갔다.

필자는 한국에서도 그다지 동인 활동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더군다나 몇 부나 팔릴지 가격을 어떻게 매겨야 할지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일본에서는 만화잡지의 편집자, 기자들이나 프로 만화가들도 동인지 활동을 많이 하기 때문에, 평소 알고 지내는 일본 출판사 직원들이나 일본의 만화가들 중 동인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얻었다. 하지만 그들도 '일본에서는 전혀 동인활동 경험이 없는 한국인에 의한 서클참가'의 결과가 어떨지에 대해서는 뭐라 단언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까지 일본 코믹마켓에 참가한 한국의 서클로는 1990년대 중반 PC통신 동호회 '천리안 애니메이트', 그리고 한국인과 일본인이 공동으로 만든 서클을 들 수 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몇몇 한국 동인서클들이 조금씩 참가하는 기반을 넓히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전체적으로 한국서클의 참가는 다 합쳐도 10회에 미치지 못한다. 여기에는 일본 코믹마켓이 응모하여 당선된 서클만을 참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시스템과 우편을 통해 신청서와 당선결과를 자주 주고 받아야 하는 절차 상의 문제로 인하여 기본적으로 해외의 주소로는 참가신청을 할 수 없다는 것이 큰 원인일 것이다.

8월 13일부터 15일까지 3일 간에 걸쳐 열린 '코믹마켓 66'에 참가한 필자의 서클은, 당초의 예상을 깨고 판매개시 1시간 40분 만에 들고간 동인지가 전부 팔리는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아마도 지금까지 일본 코믹마켓에 참여한 한국 서클로서는 가장 좋은 성적이 아닐까 싶다.

워낙 서클 배치 위치가 좋기도 했고, 사전에 필자가 일본에서 연재하고 있는 칼럼이나 잘 알고 지내는 출판사를 통해 일본 잡지에 참가 정보를 싣는 등 홍보를 많이 했던 것도 영향이 컸으리라 생각된다. 또 '라그나로크 온라인' 패러디 동인지는 필자가 기획하여 일본 엔터브레인 출판사에서 매월 발행하는 '앤솔로지' 단행본 참가 작가들이 만든 동인지였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실제 일본의 동인지도 초기의 아마추어만의 행사에서 최근에는 프로 작가가 출판사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만드는 작품을 발표하는 장(場)으로서의 역할이 더욱 커지고 있다. 프로 활동을 통해 인지도를 높인 작가가 참가한 서클의 판매부수가 일반적인 완전한 아마추어 서클을 훨씬 압도하고 있는 코미케의 현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필자의 서클에 대한 일본 독자들의 좋은 반응도 그 일환이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어쨌든 8월 13일 첫날에 참가한 필자의 서클은(일본의 코믹마켓은 3일 간의 행사기간 중 한 서클이 기본적으로 하루밖에 참가하지 못한다) 예상보다 훨씬 빠른 오전 중에 매진된 탓에 일찍 회장을 뒤로 하고 나섰다. 이번에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면 일본까지 가서 참가해야 하는 외국인으로서는 아무래도 다음 번 참가가 어려웠을 것인데, 이런 좋은 결과로 인하여 오는 12월에 개최될 '코믹마켓 67'에도 참가 신청을 했다. 일본 코믹마켓은 동인지 판매전으로서는 최대규모이지만 도쿄에서만 열리기 때문에 지방 참가자들에게는 비용 등에서 상당히 불리한 조건이다. 하물며 외국인이야 두 말할 필요가 없다. 필자의 서클도 동인지 자체로서는 흑자였지만 일본 여행비를 전부 감안한다면 결과적으로는 적자다. 필자의 경우에는 일본에 출장가는 일이 자주 있기 때문에 따로 여행비를 동인지 판매액으로 충당할 필요는 없으니 크게 상관이 없지만 학생이 많은 국내 동인서클로서는 코믹마켓 참가만을 목적으로 일본에 간다고 하면 상당한 비용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코믹마켓에 참가하는 서클은 도쿄와 그 근교인 카나가와, 사이타마, 치바현이 전체 참가서클의 61.3%를 차지한다. 일본 제 2의 도시라는 오오사카에서의 참가자는 겨우 5.1%에 불과하다. 일본 국내에서도 지방참가자가 이렇게 적은데 외국에서의 참가가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는 짐작이 갈 것이다.

물론 일본 국내에서는, 코믹마켓 이외에도 각 지역에서 개최되는 동인지 판매전이 많이 있기 때문에 굳이 도쿄까지 가서 코믹마켓에 참가할 필요가 적다는 이유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참가인원수가 50만명에 이르는 코믹마켓에 참가하지 않고서는 전국적인 서클로 발돋움할 수 없다는 현실을 볼 때, 도쿄 근교에서의 참가가 전체의 60%가 넘는 현실은 역시 지방에서의 참가가 비용 문제로 쉽지 않다는 것을 대변하고 있다.

실제로, 이번 코믹마켓 66에 참가한 서클 중에서는 단 1명의 인원이 부스를 지키며 판매하는 경우를 적잖이 볼 수 있었다. 보통 최소한 부스에 2명은 있어야 잠깐 자리를 비울 수도 있을텐데, 겨우 1명밖에 참가하지 못한다는 것은 굉장히 불편함이 따르는 일이다. 그런 서클은 대부분의 경우 지방에서 참가한 서클이다. 지방에서 참가하다보니 도쿄에 도와줄만한 아는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지방에서 자기 혼자만 올라오는 데에도 꽤나 비싼 교통·숙박비가 드는데 도우미까지 데리고 왔다가는 적자규모를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코믹마켓 준비위원회' 대표로 1975년부터 30년째 일본 동인만화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요네자와 요시히로씨는 필자에게, "전체 3만5000 참가 서클 중에서 97%는 적자"라고 말하기도 했다. 게다가 지방에서 올라오는 40% 정도의 서클들의 적자규모는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라고 한다. 아무리 프로 작가의 참여가 늘어났다고는 해도, 여전히 코믹마켓은 '아마추어의 행사'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대규모의 만화 행사를 가능하게 한 일본 동인만화 시장은 어떻게 성립했고 어떤 변화를 거쳐 현재에 이르렀을까? 다음 회에서 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다.

[콘진 CT뉴스]



선정우 (만화칼럼니스트·코믹팝 엔터테인먼트 대표)

2002년부터 일본 '요미우리신문(讀賣新聞)', 비평지 '유레카' '파상언론' 등에 한국만화계를 소개하는 칼럼 연재. 2003년 한국·일본 만화 업계인들의 교류모임 '아시아문화콘텐츠포럼(ACCF)' 창립. 9월부터 11월까지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2004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 일본관에 초청작가로 참가 예정. 베니스 비엔날레에서의 전시와 일본 오타쿠문화를 정리한 서적 '베니스 비엔날레: OTAKU'를 번역·집필. 그 밖에 만화기획사 코믹팝 엔터테인먼트(http://comicpop.com/)를 통해 한국작가 일본 진출사업 진행 중. 현재 일본에서 '라그나로크 온라인 앤솔로지 코믹' 시리즈 (엔터브레인 출판사)가 매월 간행되고 있으며, '월간 강강 WING' (스퀘어에닉스 출판사)에 '박스 프린세스 판도라' (원작:유현) 등의 기획협력 작품이 연재되었다.
트위터
이 게시물을 트위터로 소개하기

 
 

Total 418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조회
43 <만화신간> '고스트 바둑왕 승리학… 김종범 09-07 2629
42 日 동인만화시장 이해<1/2>-코믹마켓 참가… 김종범 09-06 2676
41 넷마블 '동성애 성인만화' 서비스 논… 김종범 09-03 3249
40 국제 여객선에 만화도서관 개관 (콘진) 김종범 09-03 2312
39 진정한 웰빙의 모습 아이디어와 풍자로 묘사 … 김종범 09-02 2163
38 미니시어터 9월 정기상영 프로그램 안내(애니… 김종범 09-02 2111
37 2004년 서울창작만화공모 단편만화부문 최종… 김종범 09-02 2256
36 아기공룡 둘리, 4D 애니로 제작된다(콘진) 김종범 09-02 2321
35 연재만화 ‘식객’ 마친 만화가 허영만 (동아… 김종범 09-01 2507
34 밀리언 셀러 ‘마법천자문’ 저자 김규홍씨(… 김종범 09-01 2845
33 삼국지 장비 '말벌'로 변하다 (스포츠… 김종범 08-31 2434
32 과학만화잡지 10월 1일 창간 김종범 09-01 2075
31 청주대, 만화애니메이션과 레저스포츠과 신… (2) 김종범 08-31 2378
30 `풀하우스` 성공에 힘입어 날개 단 만화들(와… 김종범 08-31 2254
29 월간 <즐김> 9월호부터 대한사회복지회에… 김종범 08-30 2144
   21  22  23  24  25  26  2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