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 만화의 보물창고다. 유명하진 않아도 수준급 작품을 보여주는 만화작가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박순구씨(33)는 숨은 보물찾기의 기쁨을 주는 작가다. 그의 작품엔 깊이가 있다. 일상의 자잘한 에피소드와 톡톡 튀는 재치로만 무장한 만화가 아니다.

동물을 통해 인간의 이야기를 다룬, 휴머니즘과 애니멀의 결합인 ‘휴머니멀’은 박씨 작품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흰쥐, 침팬지, 치와와, 곰, 두더지, 판다, 비둘기 등 작품마다 동물들은 변주하지만 관통하는 주제는 일정하다. ‘인간성’을 잃어가는 인간행태에 대한 따끔한 우화다.

이주노동자를 다룬 ‘아름다운 미소’는 약자에 대한 그의 시각이 잘 배어 있다. 흰쥐들에게 침팬지아저씨는 흰쥐 말도 못하고, 손가락도 두개가 없고, 얼굴도 무섭게 생긴 아저씨다. 하지만 초등학생인 주인공은 말없이 가족사진을 보여주는 그의 미소가 아름답다고 느낀다. 아름다운 미소를 설명하라는 숙제 때문에 친구들 앞에서 그의 미소를 설명하는 순간, 그의 내레이션과 겹치며 침팬지는 ‘닭장차’에 실려 어디론가 끌려간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치부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어느 흰쥐의 이야기’는 이라크전에 관한 만화다. 12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흰쥐. 그는 구름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렸을 적 추억과 함께 솜사탕처럼 달콤한 구름에 관한 추억을 떠올린다. 그의 눈이 클로즈업된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동자에 비친 푸른 하늘. 이번엔 차츰 줌아웃 되니 총에 맞은 채 구름을 보고 있는 한 젊은 병사의 모습이 보인다. 서정적인 추억과 대비되는 피 흘리는 병사. 구구절절한 글보다, 웬만한 사진보다 더 강렬한 호소력을 지녔다.

그는 유난히 눈동자를 많이 그린다. ‘휴머니멀’의 표지도 눈동자 2개로 구성되어 있다. 왜 눈을 자주 그리느냐는 질문에 “눈은 많은 걸 얘기해주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눈동자는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뜻이다.

‘휴머니멀’ 외에도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www.soon9.com)에 다양한 만화를 연재하고 있다. 10여개의 캐릭터와 만화를 연재하고 있는데 다양한 작품이 오히려 그의 성공엔 방해가 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존재를 각인시킬 ‘대박작품’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박씨의 스타일이다. 세상에 대한 다양한 관심이 한가지에만 몰입하지 못하게 하나보다.

물론 그의 만화엔 ‘마린블루스’처럼 젊은이들이 열광할 재치나 ‘순정만화’처럼 사람을 끌어들이는 서사의 흡입력은 부족하지만 메시지와 따뜻함, 그리움이 있다. 그래서 누구보다 가장 오래 살아남는 만화가가 될지도 모르겠다.

〈글 김준일기자 anti@kyunghyang.com〉사진 정지윤기자 colo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