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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4-12-16 17:40
한달에 한번 아이들을 위해 수다를 떱니다 (오마이뉴스)
 글쓴이 : 김종범
조회 : 2,204  
▲ <고래가 그랬어> 창간호 표지
ⓒ2004 고래가 그랬어
지난 해, 자칭 'B급 좌파'라는 김규항씨가 어린이 잡지 <고래가 그랬어>를 만든다고 했을 때 전 기대보다 걱정이 앞섰습니다. 물론 그가 대표로 있는 출판사 <야간비행>에서 여지껏 펴낸 책들의 면면을 보면 새 책에 대한 기대를 가질 만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 잡지가 '인권'이나 '생태'를 주제로 삼았을 때 과연 잡지가 팔리기나 할까 하는 걱정이 그보다 앞섰던 것입니다.

게다가 “아이들에게 권할 수 없는 상품 광고는 받지 않기와 파시스트 신문에 홍보 부탁 안하기”를 고수하고자 하는 그의 원칙이 어린이 잡지의 생존에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라 인정 받는 걸 생존 방법이라 말하는 그의 호기가 마음에 들었지만 현실적인 불안함마저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사실 30대 중반인 제 또래의 학부모들은 스스로가 진보적일 수는 있어도, 자녀가 진보적인 매체를 접하는 것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나라에서 진보적 자세를 유지하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하는 것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때문에 진보적 지식인이 사회성을 담보한 어린이 책을 만들었을 때, 과연 제 자녀에게 그 책을 기꺼이 선물할 부모가 얼마나 될까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창간호가 나오자마자 서점에서 구입하여 아홉살 예경이에게 주었습니다. 예경이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대부분이 만화여서 쉽게 읽힌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전태일의 전기를 그린 “태일이”나 “뚝딱 뚝딱 인권짓기”처럼 주제로 삼은 것들이 그리 낯익은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쉽고 재미있게 받아들였습니다.

▲ 전태일 전기가 실리는 어린이 잡지입니다
ⓒ2004 고래가 그랬어
저 역시 창간호를 다 읽고 나서 이때까지의 걱정은 기우였음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정도 내용의 책은 건전한 상식을 갖춘 부모들이 한번만 읽어 본다면 분명 제 자녀들에게 권할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박무직, 홍승우, 고우영 등 작품을 실은 만화가들의 이름이 낯설지 않았고, 만화 사이 사이에 배치된 짧은 산문들은 영화의 뒷이야기나 우리의 전통놀이 등 그 소재가 다양하여 아이들의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습니다.

예경이는 한권을 후다닥 다 읽고 나더니 다음 호는 언제 나오냐고 닥달을 해댔습니다. 그 이후 매달 서점에 <고래가 그랬어>가 배포되는 날에 맞춰 책을 사 오지 않으면 난리가 날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래가 그랬어>에 글을 쓸 필자를 찾는다는 공지를 봤습니다. 만화와 만화 사이에 '최소한의 사회성'이 담긴 한두 쪽짜리 글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즐겨 읽는 잡지에 제가 쓴 글이 실린다면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하는데 생각이 미치자 부족한 능력은 시간과 땀으로 채우겠다는 맘으로 출판사에 기획안을 보냈습니다.

가끔 우리 아이들에게 읽어 주고 싶은 좋은 책들을 <오마이뉴스>에 소개한 적이 있는데, 아빠가 자녀에게 읽어 주는 형식으로 책을 소개하겠다는 안이었습니다. 사실 책을 소개하는 것보다는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책을 소재 삼아하겠다는 생각이 더 컸습니다.

기획안은 채택됐고, 보낸 원고는 다음 달(4월) 책에 실렸습니다. 기러기를 소재로 삼아 장애 문제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주는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를 소개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처음 쓰는 것이라 몇 번의 탈고를 하고도 보내 놓고 나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그 글을 읽은 예경이는 영악하게도 아빠 이름이 책에 실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감동 먹은 표정을 지어 주었습니다.

▲ 전 만화가 아닌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2004 고래가 그랬어
<오마이뉴스>에 400편이 넘는 기사를 쓰면서도 특별히 긴장을 하며 쓴 기억은 별로 없었습니다. 아마도 자발적으로 써서 올리는 게 대부분이고, 마감이 따로 없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고래가 그랬어>에 보낼 원고를 쓸 때는 책을 고를 때부터 원고를 전송할 때까지 긴장의 연속입니다. 특히 마감일이 되어서도 원고가 마무리 되지 않으면 일이 손에 잡히지가 않습니다. 책이 나오고 아이들로부터 재미있다는 말 한마디 듣고 나서야 비로소 긴장이 풀리지요.

<고래가 그랬어>에 글을 싣는 일은 제게 여러모로 의미있는 일입니다. 그 동안 창간 초기부터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많이 써 왔다는 이유로 TV나 라디오에 출연도 하고, 신문이나 잡지 등에 한두 번씩 글을 쓴 적은 있었지만 정기적으로 필자가 되어 글을 쓴 것은 <고래가 그랬어>가 처음입니다.

그동안 “아이들이 살 만한 세상을 꿈꾼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실제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은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고래가 그랬어>에 글을 실으면서 이제서야 아이들에게 유익한 일을 한다는 혼자만의 자부심도 갖게 되었습니다.

▲ 미디어를 대하는 올바른 눈을 갖게 해 줍니다
ⓒ2004 고래가 그랬어
글을 싣는 대가로 받게 되는 원고료는 대부분의 <고래가 그랬어> 필자들처럼 책을 사 볼 형편이 되지 않는 아이들에게 그 값어치만큼 책을 보내는 조건으로 받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평소 남을 위해 제 것을 내놓는 일에 무척이나 인색한 저의 양심에 일말의 위로가 되어 줍니다.

올 한해 뒤돌아 보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자격으로 팔자에 없는 터키 방문도 하고, 가정에서도, 회사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 잡지 <고래가 그랬어>의 필자가 된 것보다 더 제게 값지고 보람된 일은 없었습니다.

이봉렬(solneum) 기자

기사에도 썼지만 “아이들에게 권할 수 없는 상품 광고는 받지 않기와 파시스트 신문에 홍보 부탁 안하기” 원칙 때문에 <고래가 그랬어>의 사정이 별로 좋지 않다고 합니다. <고래가 그랬어>를 통해 어린이 책을 만들 때 ‘지킬 것 지키고도 된다’는 성공 사례 하나 만나고 싶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두신 분들이 이 글을 읽고 <고래가 그랬어-www.goraeya.com>의 정기 구독자가 되어 주신다면 저의 보람은 더 더욱 커질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좋아 하는 책, 아이들에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권할 수 있는 책 하나 계속 출간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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