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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2-11 14:26
<숨은만화찾기> 그림 속에 담아 놓은 마음(오마이뉴스)
 글쓴이 : 김종범
조회 : 2,751  
▲ 김 인 <그림자 소묘>
ⓒ2005 새만화책
그림 속에 담아놓은 마음

<그림자 소묘>

우리가 읽고 있는 대개의 상업만화는 펜과 먹과 톤을 이용해 종이 위에 그려지고 있다. 그것은 작가들이 다양한 재료의 사용법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 안에 작품을 완성해 종이 위에 대량으로 찍어내야 하는 상업만화와 인쇄 시스템에 좀더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출판환경의 변화와 인쇄기술의 발달은 작가들에게 더 다양한 재료와 작법을 사용하고 실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으며, 그렇게 창작된 다양하고 개성 있는 만화들은 만화 독자들에게 축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그림자 소묘>는 콘테와 붓으로 그려졌다. 만화로서는 드문 이 재료들은 그림을 그려 세상과 소통하는 주인공 주희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리고 잃어버린 자아(존재감-그림자)를 찾아가는 소녀의 모습을 좀더 효과적으로 묘사하는 데 더없이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그림자 소묘>의 장점은 단지 드문 재료를 사용했다는 실험성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담담하게 이어지다가 문득문득 독자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독특한 구도와 연출은 만화를 읽는 재미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새삼스레 일깨워준다.

▲ 체스터 브라운 <너 좋아한 적 없어>
ⓒ2005 열린책들
건조하고 무뚝뚝한, 소년의 순정

<너 좋아한 적 없어>

체스터 브라운은 1980년대의 캐나다에서 일어난 얼터너티브 코믹북(기존 상업만화에 대한 대안으로 일어난 만화 운동)의 르네상스를 이끈 대표적인 만화가다. 또 체스터 브라운은 <너 좋아한 적 없어>의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자신의 소년 시절을 그린 이 자전적 만화에서 체스터 브라운은 1970년대 캐나다 몬트리올 교외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소심한 소년 체스터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 보여주고 있다.

마음의 교감은커녕 일상적인 소통마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가족, 장난이나 저질스런 농담만이 전부인 동급생들과의 교류, 실체가 의심스럽거나 서로 어긋나기만 하는 여자아이들에 대한 감정 등이 소소하고 구체적인 정황들을 통해 지나치다 싶을 만큼 솔직하게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의 근원조차 파악하지 못해 어쩔 줄 몰라 하는 (작가이자 주인공인) 체스터 브라운의 이 솔직함을 과연 솔직함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아무도 없는 부엌에 홀로 앉아, 어디에도 시선을 고정시키지 않은 채로 묵묵히 비스킷을 씹고 있던 소년 체스터의 눈은 과연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아아 소년들이여, 그대들의 순정은 왜 그리도 무뚝뚝하단 말이냐.

▲ 김민희 <르브바하프 왕국 재건설기>
ⓒ2005 서울문화사
마침내 왕국은 재건되는가?

<르브바하프 왕국 재건설기> 1~3(완결)

터무니없이 진지하기만 한 극화 만화에 지친 독자들에게 요절복통할 웃음을 선사하며 '만화란 바로 이렇게 낄낄거리면서 보는 것이었다'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자각시켜줬던 <르브바하프 왕국 재건설기>가 아쉽게도 완결편을 내놓았다.

몰락한 왕국의 철부지 왕자 반(로뎀하윈즈 차미도르 구뜨 르브바하프 릴리 루미안)과 '가녀린 괴력'의 시녀 코나, '노령의 꼬마' 사상가 시안 등 세 주인공을 중심으로 엽기적인 개성을 지닌 조연급 캐릭터들이 다양하게 등장하며 아기자기 위태위태하게 이어지는 이야기는 바닥을 구르며 만화를 읽던 독자로 하여금 문득문득 이런 걱정 아닌 걱정을 하게 만들어버린다.

'이러다가 왕국 재건은 어느 세월에 이루어질꼬….'

그러나 제목에서 이미 노골적으로 왕국 재건을 암시하고 있듯이, 올바른 정치에 대한 고민을 통한 왕자의 (느린) 성장, 왕국 재건의 희망을 노래하던 음유시인의 희생, 백만 병력의 함성 소리(를 내는 구관조)와 함께 등장하는 장군 등 이야기의 흐름은 차분히 왕국의 재건을 향해 나아간다. 왕국의 재건은 어이없고 황당하게 이루어지지 않을까라는 독자의 기대는 과연 이루어질 것인가.

▲ 디(di:) <엔젤미트파이>
ⓒ2005 황매
몽환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소녀의 우울

<엔젤미트파이>

소설과 만화의 형식을 결합한 퓨전장르인 노블코믹(Novel Comic). 지난해 국내 작가에 의해 노블코믹이란 이름으로 발간된 <아이 먹는 여자>가 장르의 혼합이라기보다는 '만화가 삽화로 들어간 산문'의 느낌이었다면, 노블코믹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디(di:)의 <엔젤미트파이>는 장르의 퓨전이 어떤 것인가를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가가 직접 만들어 부른 노래가 들어있는 부록 CD를 듣다보면 이런 인상은 더욱 강해진다.

표제작 <엔젤미트파이>의 주인공 에나는 일곱 살 생일에 천사의 고기로 만든 파이를 먹고 난 이후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종이봉투로 보이게 됨으로써 세상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이는 종이상자를 뒤집어씀으로써 세상에서 자신을 고립시켜버리는 '혼자놀기'의 주인공 스노우캣과 묘한 대조를 이루는 부분이다. 그로테스크한 상황설정과 캐릭터들의 모습에서는 팀 버튼의 캐릭터들이 연상되기도 하는데, 팀 버튼의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이 간결한 우화의 형식을 빌고 있다면 <엔젤미트파이>는 소설의 형식을 빌어 좀더 구체적인 정황과 복잡한 심리까지를 묘사해 보여주고 있다.

이성민 기자


덧붙이는 글
- <그림자 소묘> 김인/새만화책/8,500원

*출판기념전시회 : 2월 2일~20일, 서울애니메이션센터 테마기획전시실

- <너 좋아한 적 없어> 체스터 브라운/김영준 옮김/열린책들/7,500원

- <르브바하프 왕국 재건설기> 1~3(완결) 김민희/서울문화사/각권 3,800원

- <엔젤미트파이> 디(di:)/황매/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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