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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2-15 17:21
상상이 만화의 전부는 아니다 (경향신문)
 글쓴이 : 김종범
조회 : 2,453  

상상이 만화의 전부는 아니다. 때로는 어떤 장르보다도 강렬하게 현실을 드러내고 반영한다. 이런 만화는 상상의 세계만큼 신나지 않지만 읽고 나면 묵직한 감동과 경쾌한 웃음이 있다. 최근 나온 ‘오세영-한국단편 소설과 만남’과 ‘다르면서 같은’ 만화작품집은 한국인의 생활상과 정체성이란 쉽지 않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재미의 끈을 놓치지 않은 수작이다.

# 오세영의 ‘한국단편소설과 만남’

청년사에서 출간한 ‘오세영…’은 작가 14명의 단편문학작품 19편을 수록했다. 그러나 오세영은 문학을 단순히 만화로 번안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작가 후기에 “만화는 문학의 시녀가 아니라 예술 장르의 당당한 주인”이라고 밝혔듯 한국 만화계의 대표적 리얼리스트인 오세영은 만화만이 표현가능한 20세기 초중반 생활상을 충실히 그려냈다. 구부정한 허리에 깊게 팬 주름의 얼굴들은 그동안 서구화·일본화된 만화주인공만 보아오던 우리에겐 낯설지만 정겹다. 왜곡되지 않은 한국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쓰지 않는 사투리와 옛말도 원작 그대로 사용하는 등 원작의 완벽한 재현을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이 만화엔 얼마전까지 문학교과서에 실리지 못하던 이름들이 다수 있다. 김만선, 김사량, 박태원, 안회남, 이근영, 이태준, 최명익, 현덕 등 월북작가들이 그들이다. 오세영은 한국문학사에서 그간 존재조차 지워졌던 이들을 펜과 붓으로 복권시켰다. 게다가 북한작가 림종상의 작품을 그리는 등 오세영은 다른 이들이 하기 힘든 작업을 뚝심있게 밀어붙였다.

각 작품별로 원작자 소개와 작품소개가 실려 있고 어려운 말풀이도 실려 있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이희재, 박흥용, 이두호 등 19070~8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재밌는 작품을 잇따라 출간하는 청년사의 열정을 한번 믿어볼 만 하다. 3만원.


# 데릭 커크 킴의 ‘다르면서 같은’

2004년 이그나츠 유망신인상, 아이즈너 인기상, 하비 최고신인상을 받아 미국 만화계 3관왕에 올랐던 데릭 커크 킴의 작품집 ‘다르면서 같은(길찾기)’은 제목 그대로 ‘같으면서도 다른’ 미국 소수인종의 고민이 그대로 담았다. 그러나 고민이 지루하거나 암울하지는 않다. 일상적으로 부딪힐 수 있는 자잘한 에피소드만으로도 정체성 고민을 드러내는 데는 충분하다. 표제작 ‘다르면서 같은’의 주인공 사이먼은 고교동창들을 만나는데 이들은 사이먼에게 중국어 수업에 관해 이야기한다. 미국에선 한국계라는 것은 중국인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20대 한국계 미국인인 사이먼은 역시 한국계인 친구 낸시에게 시각장애인인 아이린과의 옛 우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편 낸시는 자신의 집에 전에 살던 사라에게 사랑의 편지를 줄곧 보낸 벤에게 사라인 척 답장을 해왔다. 이 사실을 친구 사이먼에게 알리고 벤이 어떤 사람인지 몰래 보기 위해 떠난다. 이들은 벤과 아이린을 만나며 자신들이 겪어온 위화감을 내적 성숙의 계기로 삼는다.

미국 코믹스의 영향을 받은 그림체이지만 대사가 많은 것이 특징. 속사포처럼 서로 대사를 주고 받는 미국 코미디 영화의 유머를 만화에 고스란히 적용했다. 미국 언론 방송에서 작가를 ‘그래픽 소설가’라고 칭하게 만든 이유다. 표제작 이외에도 한국계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의 소통문제를 그린 ‘휘발유’, 9.11 테러 다음날 테러에 대한 분노·슬픔으로 그린 ‘인간과의 인터뷰’, 사랑·섹스의 자학적 위트가 담긴 ‘올리버 픽’ 등이 쏠쏠한 재미를 준다. 6,800원.

〈김준일기자 ant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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