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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4-10-19 10:58
'깡다구' 철인 캉타우를 아시나요? (오마이뉴스)
 글쓴이 : 김종범
조회 : 2,572  
첫 만남, 첫 나들이, 첫 집, 첫 눈 등 '처음'이라는 낱말은 왠지 모를 설레임과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시인 정일근은 <처음의 아름다움>이라는 글에서 '첫사랑, 첫키스, 첫만남, 첫눈, 첫날밤……. '첫'이란 접두사가 들어있는 말은 누구에게나 가슴이 뛰는 설렘을 준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서 처음 책은 무엇이었을까.

기억하지 못하는 가운데 처음 책이 있었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처음 책은 '만화'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읽은 만화책 <로보트 태권 V> <철인 캉타우>가 내 기억 속에 들어온 최초의 책이다. 두 책 중 한 책이 분명 먼저였겠지만, 어느 게 먼저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 역삼동 문화콘텐츠센터에 전시중인 로보트태권V 캐릭터
ⓒ2004 김대홍
<로보트 태권 V>는 아버지가, <철인 캉타우>는 외삼촌이 사주셨다. <로보트 태권 V>는 서점에서, <철인 캉타우>는 동네 시장에서 구입했다. 지금도 희한하게 생각하는 점은 당시 사회에서 만화를 바라보는 인식이 그다지 좋지 않았음에도 아버지와 외삼촌은 순순히 나에게 만화책을 사주셨다는 점이다.

1976년 처음 선을 보인 <로보트 태권 V> 시리즈는 <로보트 태권 V> <로보트 태권V 2탄 우주작전> <로보트 태권V 3탄 수중특공대> <로보트 태권V와 황금날개의 대결> 등으로 이어졌다. 당시 이 시리즈 전집을 모두 다 사달라고 할 용기가 없었던 나는 한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는데, 지금 기억으로는 '수중특공대'도 샀던 듯싶다.

태권V를 그린 작가는 김형배. <로보트 태권V>로 SF 인기작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이후 <20세기 기사단>(1980~83, 새소년), <은빛날개V>(1982~84, 소년동아일보), <우주해적 사이코>(1984~86, 어깨동무), <21세기 기사단>(1986, 소년경향) 등을 잇따라 그리며, 나를 SF의 세계로 이끌었다.

<로보트 태권V>는 해저왕국의 독재자 수탄을 쳐부수고 선량한 양서인간들을 구한다는 이야기다. 바다 속에 대규모 목장을 만들어서 식량을 만든다는 이야기는 무한한 자원의 보고이자 새로운 개척지로서 바다를 더없이 신비한 곳으로 만들었다.

게다가 인어의 등장, 무섭기보다 오히려 징그럽고 흉측한 수탄의 부하들. 공룡을 닮은 해저 괴수의 등장은 바다 속과 깊은 물 속에는 분명 고대 공룡의 후손이 살아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했다. 이후 '네스의 괴물'을 오랫동안 믿었던 것도 아마 이 책의 영향이 있지 않나 싶다.

그런데 당시 <로보트 태권V>보다 더 강한 인상을 받았던 작품은 이정문이 그린 <철인 캉타우>다. 1976년 '어깨동무'라는 잡지 별책부록에 나가, 태권V와는 비슷한 연배인 캉타우는 '깡다구'에서 이름을 빌어왔다.

어린 시절에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보트 태권V보다 철인 캉타우가 훨씬 강한 인상을 주었던 이유는 아군의 처참한 패배가 등장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물론 마징가 Z나 로보트태권V가 부상을 당하고 팔이 부러지고 파손을 입기도 하지만, 결국 그 이상의 패배는 당하지 않는다.

▲ 최고의 비만(?) 로봇 철인 캉타우. 유년시절 가장 강렬한 인상의 남긴 로봇이다.
그런데 철인 캉타우에는 아군 수십 대가 상대편 로봇 1대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원래 철인 캉타우는 한 대가 아니라 100대나 됐다. 그런데, 악당 로봇인 쟝카 1호와 대결해서 무려 50대가 파괴된다. 게다가 나머지 50대도 알론 3호와 펠타 9호에게 당해 1대만 살아남는다.

기억하기로 전세계 로봇 대전에서 아군 로봇이 이렇게 비참한 패배를 기록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살아남은 1대의 철인 캉타우는 이후 적군 로봇 378대를 한 순간에 격파해 과거의 복수를 톡톡히 한다.

작품 속에는 철인 캉타우와 마징가(그레이트 마징가로 보임)의 대결이 펼쳐지고, 한방에 마징가가 바다 밑으로 사라지는 장면이 펼쳐지는데, 복간본을 보기 전까지는 이 내용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아마 마징가를 우리 나라 로봇으로 알고 있었기에, 한·일 대결이라는 작가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복간본을 다시 보니, 어릴 때의 감흥보다는 너무나 엉성할 줄거리 전개에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러나 줄거리는 비록 엉성했을망정 이들 책들은 꿈꾸는 즐거움을 누리게 해 준 인생의 나침반이었다. 우유곽을 만들어서 배를 띄울 궁리를 하고, 우산을 튼튼하게 만들어서 하늘을 나르는 꿈을 꾸며, 집에서 벗어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할 계획을 짜곤 했다.

생각해 보면 이 당시 만화는 모두가 환상과 모험으로 가득했던 듯싶다. 만화평론가 이명석은 <이명석의 유쾌한 일본만화 편력기>에서 '오늘날의 '개그 만화'가 즉흥적인 말장난이나 과장된 표정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반면 이 시대의 '명랑 만화'는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신기한 발명품을 매회 선보이지 않으면 안되었고, 작가의 아이디어가 고갈되면 단번에 소년 소녀들의 질타를 받지 않을 수 없는 처지였다'고 평가를 한 바 있다.

이 두 책으로 시작된 만화속 여행은 한동안 공백기를 거쳤다가,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왔다. 그 시대 두 권의 책이 던졌던 메시지는 꿈과 미래였다. 그런데, '꿈과 미래'를 과거속에서 다시 찾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김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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