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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1-11 11:47
이상석·박재동의 '못난' 학창 시절 (오마이뉴스)
 글쓴이 : 김종범
조회 : 2,598  
수많은 책들 중에서 무엇을 읽을지 잠시 고민하다가 한 책에 눈길이 머물렀다. 이상석이 글을 쓰고 박재동이 그림을 그린 <못난 것도 힘이 된다(지인)>가 손에 잡힌 책이었다. 이 책에 손길이 간 것은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내가 못난 탓일까.

▲ <못난 것도 힘이 된다> 표지
ⓒ2005 자인
무엇이 못나서 지은이는 제목에까지 못났다는 이름을 넣었을까. 공부도 별로, 싸움도 별로, 모든 걸 대충대충 보낸 게 이상석의 중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집안이 어렵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책값으로 받은 돈으로 중국집 가서 탕수육에 배갈을 시켜 마시고, 고등학교 재수를 할 때는 지역 주먹잽이의 똘마니 노릇도 마다 않았다.

어머니 걱정에 잠시 눈물을 흘리다가도 다음 날이면 돌아서고, 선생님의 한없는 믿음에 미안해 하다가도 이내 잊어버리던 생활을 이어가던 지은이였다. 고등학교 시험에 떨어져 재수를 했는데, 이듬해 친 시험에서도 1차와 2차 시험에 모두 떨어져 3차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대학시험에서도 떨어져 재수를 했단다.

이상석은 '들어가는 글'에서 자신을 이렇게 평가한다. '싸움질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깡다구도 별로 없으니 '오야붕'은 될 턱이 없고, 패거리 힘만 믿고 싸움판에 얼씬거리기나 했지 뭐 잘하는 게 있었겠나. 기껏 힘깨나 쓰는 놈 '꼬붕'이 되어서 공갈이나 치고 있었을지 모르지.' 학창 시절 대부분을 열등생으로 보냈고, 모범생보다는 불량 학생에 더 가까웠던 게 이상석이었다.

그렇다면 굳이 내세울 것 없는 그 과거사를 들추면서 지은이가 책을 쓴 이유가 무엇일까. 먼저 저자의 직업부터 말해야겠다. 저자의 직업은 교사다. 자신같이 못난 사람도 교사가 되는데, 희망을 잃지 말라는 말을 전하고 싶었단다.

다소 딱딱하게 진행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책의 내용은 무척 재밌다. 저자가 일기 속에서 뽑아낸 사연들이 고스란히 적혀 있기 때문이다. 좌충우돌하고 변덕스럽고 치기어렸던 시절의 모습들이 포장되지 않은 날 것 상태로 등장한다. 집에서 하숙하던 여고생 누나의 방을 몰래 훔쳐보고, 애인을 양도하던 것까지 이야기할 정도니 말이다.

웬만한 이야기들은 상대가 안 되는 저자의 '고문관' 이야기도 기발하다. 훈련소 기간에 전혀 훈련을 받지 않은 이상석은 군대 시절 내내 군대를 발칵 뒤집을 만한 사고를 여러 차례 저지른다. 자신만의 은밀한 일기를 공개한다는 게 쉬운 결단은 아니었겠지만, 그만큼 '못난 시절'은 생생하게 다가온다.

이 책에는 6, 70년대의 가난하면서 정이 넘쳤던 풍경이 생생히 그려져 있다. 간식거리로 인기가 높았던 미숫가루, 별이 그려져 있던 '육군 건빵', 그리고 '오달진' '칼클은' '북살할' 같은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들이 그대로 등장한다.

정과 낭만이 넘치는 사람들 이야기도 가득하다. 아무리 엇나가도 믿음을 거두지 않았던 하서영 선생님, 넓은 품으로 항상 보듬어주셨던 대견 아재, 허무주의자 맹초 형, 동갑이면서 든든한 버팀목이 됐던 기준이 이야기를 읽노라면 잠시 책장을 덮고 내 주위 사람들을 떠올리지 않을 재간이 없다.

주위 사람들에 대한 한없는 고마움을 표시하고 자신을 질책하는 글쓴이의 글을 따라가면서 어느새 그 질책을 자신에게도 하게 된다. 깡다구가 있고, 많은 이들이 힘을 빌고자 했지만 한 번도 패거리를 만들지 않고, 한 번 기를 꺾은 사람을 해코지하지 않았던 친구 윤재의 이야기가 특히 그랬다.

"내가 고등학생들과 함께 산 지 20년이 넘어도 윤재 같은 아이를 만나지는 못했다. 힘이 조금 있어 보인다 싶으면 그냥 그 앞에 엎어져서 알아서 기는 아이들만 보았다. 이 세상 사람들 사는 모양도 다 그런 것 같다."

톨스토이의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보면 자식을 홀로 두고 하늘로 떠나는 어머니의 안타까움이 나온다. 한참 지난 뒤 천사의 도움으로 자식을 보게 된 어머니는 깜짝 놀란다. 너무나 밝게 잘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주위 사람의 도움 때문이었다. 이상석도 '그 길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따뜻한 손길이 나를 이런 뒤늦은 행복으로 이끌었다'고 털어놓는다.

행복보다는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은 게 인생이다. 이상석의 삶도 그랬다. 특히 '바바리'라고 불린 한 여자의 삶은 오랫동안 책장을 덮고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가장 친한 친구인 박재동과 이상석은 동시에 바바리를 좋아했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와 똑같다. 박재동이 먼저 좋아하고, 속으로만 좋아하던 이상석이 나중에 바바리와 사귀는 사이가 된다.

젊은 시절 풋사랑이 대부분 그렇듯이 뜨겁던 열정도 이내 식었지만, 상대방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군대간 뒤에 갑자기 찾아와서 '결혼' 이야기를 꺼냈단다. 그 뒤로 연락이 끊어진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건 중년이 다 되어서였다. 여자는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다가 식당에서 잡일을 하고 있더란다. 피천득의 '인연'을 떠올리게 만드는 대목이다.

잘 하는 것 하나 없었다고 저자는 여러 차례 고백하지만, 단 하나만은 예외다. 밤새워 일기 쓰고 편지 쓰는 일이다. 그 유일한 장기를 살려 저자는 지금 한국 글쓰기 연구회에서 '우리 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 공부를 하고 있고,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친다. 그런 글솜씨로 '못난 것도 힘이 된다'가 만들어졌다. 수식어가 많고 아름다운 꾸밈말이 많은 문장만이 감동을 주는 게 아님을 이 책은 잘 보여준다.

저자가 자신의 삶을 통해 들려주고자 한 이야기는 이것이 아닌가 싶다.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야지. 하기 싫은 일을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수 없이 하고 있다면 그것만큼 불행한 일은 없다."

저자의 가장 오랜 지기인 박재동의 중고등학교 시절을 엿볼 수 있고, 그의 그림들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는 건 덤이다.

김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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