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과 상술로부터 거리를 둔 이른바 비주류 작가들이 대중들에게 한발 더 다가가기 위한 시도다. 기획도 맡은 왕지성씨는 머리말에서 “낯선 만화, 낯선 작업을 외면하는 현실, 재미없다는 비판, 주류에 편중된 우호적인 시선 등에 대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책이 시작하고 있다고 밝힌다.

개성이 강한 이들인 만큼 책 전체를 꿸만한 주제가 있을 리 없다. 기실 불가능할 것 같다. 대신 작가만의 고유한 그림체만큼이나 이야기를 전하는 양태가 다양하다. 사조로 가늠하자면 사실주의에서 마술적 사실주의는 물론, 초현실주의까지 널뛴다. ‘놀이터’를 실은 이경석을 통해 우리 만화 ‘비주류’ 현주소를 살피는 게 가능하다. <히스테리> <팬덤 공> 등 참여했던 잡지들이 ‘몽땅 망해’버린 운 없는 작가인데다, 주류 잡지에 작품을 실으며 비주류의 활로를 모색하기도 했다. ‘놀이터’는 가난의 비루함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제 몸 하나 겨우 누일 비좁은 단칸방에서 방세를 걱정하는 용팔이는 “걱정이 없는 얼라들(어린이)”마저 질시하는 철저한 주변인. 굶을 자유조차 없는 그가 의지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게 자살이다. 부모와 함께 단란했던 어린 한 철을 영속화하는 수단인 셈이다. 주로 얼굴 표정을 ‘줌인’한 거친 데생이 효과적이다.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쥬’로 만화적 상상력의 힘을 보여줬던 최규석의 ‘자살방조’, 아이완의 ‘어디에도 없는 동물’에서는 소외와 관계에 대한 풍유적 시선이 잘 담겨있다.

홍승우의 작품은 제목부터가 ‘상상’이다. 어떤 인과나 원칙 없이 상상의 영역을 넓혀간다. 대단히 사실적인 석정현의 그림(‘반추’)과 꼴라주의 채색효과를 드러내는 이애림의 작품(‘파라노이드’), 김수박(‘진실의 바다’)과 이우일(‘계급4’)의 냉소적 유머 등이 책을 알차게 채우며 그들만의 세계를 한목에 조망토록 하지만 모두가 균등한 완결성을 가지지는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