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의 낮과 밤 등 궁핍한 시절 담아
비좁은 골목 사이로 물지게를 지고 나르는 아이들, 청계천 개울가에 앉아 가슴을 드러낸 채 빨래하는
아낙들, 통나무 전신주, 쇠줄을 돌려 감아 어깨에 메고 징을 치며 돌아다니는 굴뚝 청소부….
이제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1945년 해방 직후부터 1970년대 중반에 이르는 `그때 그 시절'의 모습들이 고바우 김성환 화백의
붓끝에서 되살아났다.
대표적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의 김성환 화백이 한국전쟁 발발 직후 피난민의 행렬, 피난지의 고단한 삶, 전후 서민들이 모여 산 청계천
부근 판자촌의 모습 등을 담은 풍속화집 `고바우 김성환의 판자촌 이야기'(열림원)를 펴낸 것.
그는 1951년 군 트럭을 타고 피난을 갔다가 대구 동천시장 판자촌에서 풀빵장수 아저씨와 미장공 할아버지, 지게꾼 아저씨 등과 단칸방에서
함께 생활했던 자신의 생생한 경험을 그림에 그대로 녹여냈다.
기관차 하나를 그리기 위해 철도박물관에서 며칠을 스케치하고 우체통, 전신주 하나도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가며 공들여 그려 당시 서민들의
생활뿐 아니라 사회, 정치, 경제 상황까지도 그대로 담아내 잊혀져가는 우리 역사의 한 면을 되살려냈다.
책에서 그는 자신의 그림에 직접 글을 붙여 그림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사물, 풍물들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와 전해준다.
모두 3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에서는 해방 직후 서울 남대문 시장 풍경을 비롯해 한국전쟁 발발과 1.4 후퇴 때의 피난행렬을 기록한
풍속화를 담았다.
제2부에서는 1950년대 피난지 대구와 해방촌, 동대문
근처와 청계천 판자촌 등 팍팍했던 판자촌 서민들의 삶을, 3부에서는 1960년대 청계천을 비롯해 신설동, 아현동, 신림동의 판자촌과 청계천
판자촌 쇠락의 결정적 계기가 됐던 1974년 대화재를 보여준다.
급변하는 세태 속에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그때 그 시절'의 모습을 남기는 것을 자신의 숙제라고 생각했다는 김 화백은 서문에 판자촌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담아 이렇게 회고한다.
"판잣집에 석양이 비치면 이 무질서하고 궁핍한 동네도 금빛으로 빛나 아름답기까지 했다. 그 속에 꿈틀거리는 인간 군상들의 약동하는 삶의
의지와 희망은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116쪽. 9천800원.
(서울=연합뉴스) 박인영 기자 mong0716@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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