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명 공부방 아이들의 올망졸망한 눈길이 일제히 만화가 이현세씨의 펜 끝을 따라 움직였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꼼짝도 않던 아홉살 희연(가명)이는 완성된 캐리커처와 책을 받고는 그제서야 환한 웃음을 지었다. "까치 아저씨, 저도 그려주세요""저도요!"하며 몰려든 아이들로 공부방에는 때아닌 긴 줄이 생겨났다.

21일 오후 서울 강북구 번동 '사랑의 공부방'에는 이현세씨가 '그림 그려주는 산타'가 돼 찾아왔다. 이씨는 한 시간여 동안 피곤한 기색도 없이 책 속지에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캐리커처와 자신의 사인을 넣어 선물했다.

그는 최근 2권까지 출간된 자신의 학습만화 시리즈 '만화 한국사 바로보기'(녹색지팡이) 2000권을 We Start 운동에 기증했다. 이 책들은 We Start 실행단체인 사단법인 '사랑의 친구들'에 의해 전국 150여개 공부방에 보내질 예정이다. 이날은 이씨가 직접 책을 들고 그 중 한 곳을 방문한 것. 그는 "아이들의 표정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밝아 기분이 좋다"며 웃었다.

책을 펴든 아이들은 "이 책 정말 아저씨가 그렸어요?""선사시대에는 청동기가 핵폭탄만큼 강한 무기였다는데, 정말이에요?"라며 질문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5학년 진우(가명)는 "학교에서도 역사를 배우지만 만화로 보니 더 재미있다"며 독서삼매경에 빠졌다.

'사랑의 공부방'에서는 네 명의 교사가 인근 저소득층 가정의 초등학교 학생 30명의 방과 후 보충학습을 도와주고 있다. 이 공부방에는 최근 We Start에 기증된 아동용 도서 200여권도 함께 비치됐다.

공부방 이경란 교사는 "그간 아이들이 컴퓨터 게임에만 몰두할 뿐 책을 잘 안 읽었다"며 "그러나 책이 들어온 뒤에는 쉬는 시간에 틈틈이 꺼내 읽는 학생이 많다"고 말했다.

책 나누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사랑의 친구들'은 올해 7만5000여권의 기증용 도서를 받아 최근까지 6만여권을 배포했다. 이 단체의 이정원 부장은 "홈페이지에 게시판에는 연일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아이들이 쓴 독후감 등이 끊이지 않고 올라온다"고 전했다.

이날 아이들과의 만남을 마친 이현세씨는 "날씨도, 경제도 온통 얼어붙었다지만 아직도 주변의 조그마한 정은 많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며 "누군가 먼저 나서기만 하면 주변에서도 같이 따라 나설 것이고, 우리 사회는 더 훈훈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jming@joongang.co.kr / 사진=김춘식 기자 cyjbj@joongang.co.kr